6기 김선미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3일 한의약의 표준화와 과학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범한의계가 참여하는 ‘근거중심 한의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연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한의학은 같은 질병에 대해 환자마다 치료법이 달라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복지부와 한의학계는 진료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떤 질환이나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있는 보편적인 진료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한의과대학장협의회, 한의학교육평가원, 한의학회, 한의사협회, 한방병원협회 등 한의학 전문가가 참석하는 추진위에선 내년부터 2021년까지 우선 30개의 질환에 대한 표준임상 진료지침을 개발하게 됩니다. 진료지침은 대학 교육과정과 보수교육, 한방공공보건사업 등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일선 의료기관까지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공공 및 민영보험의 수가 개발 과정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의료계에서는 진료의 표준화보다는 한의학의 안전성 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의료협회는 추진위원회를 한의학계 인사들로만 구성한 것을 꼬집으며 명확한 표준화와 과학적 검증을 위해 의료계 전문가는 물론 공익 및 시민단체의 참여도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한의학에서의 진단명은 의학에서 차용하여 쓰기 때문에 관련 학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등 검증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우선 한의학을 표준화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의 투명성입니다. 표준진료지침 개발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어떤 연구과정을 거쳐 검증된 근거인지 등을 공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는 한의학 표준진료지침의 개발이 건강보험급여를 확대하려는 것이라는 지적과 표준진료지침 개발 과정에서 한방 의료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우려들은 추진 위원회가 표준화 프로젝트에 대하여 이해관계를 가장 크게 가지는 당사자 집단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입니다. (현재 추진위원회는 복지부, 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 한의학교육평가원, 한의학회, 한의사협회, 한방병원협회, 한의학연구원, 학계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위원회 인원 구성의 균형성을 갖출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해관계 당사자의 권익보호를 위해서가 아닌, 진정한 근거중심의 한의학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면 시작 단계에서부터 불필요한 의혹은 배제시키고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의료계에서 표준진료지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기준을 살펴보고 그에 상당하는 기준에 따라 표준화를 추진해야 환자들로부터 그리고 의학계로부터 보다 신뢰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표준화 진행 과정에서 한의학계 내부 의견 수렴에 관하여 충분한 논의절차가 확보되어야 하고 의사결정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은 진단하는 사람에 따라 진단 및 치료방식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기에 이 부분이 표준화의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도 ‘의료기관별, 의료인별 상이한 진료방법은 치료의학으로서 한의학의 중장기적 발전을 저해하고, 한의약 국제화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한의학에 대한 지적이 담겨있듯이, 이는 그동안 의료계에서 한의학에 대해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이기 때문에 한의약의 표준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표준임상진료지침을 만들고자 한다면 철저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해야 하고, 과학적 근거를 갖춘 지침들이 중복될 경우 내부에서 충분한 검증과정과 토의를 통하여 선별된 것이어야 내외부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원화된 의료체계에서 의료계와 한의계는 한의약의 안전성 문제를 놓고 근거를 끊임없이 다퉈왔습니다. 양측은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문제의 근본 해법으로 의료일원화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료일원화가 의학이 한의학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한의학의 명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현 체계에서 한의약의 안전성의 검증과 과학화, 표준화 단계를 거쳐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도 이번 표준진료지침 개발 시도를 통해 한의학의 과학화 가능성을 확인하고 한의 진료의 발전을 유도하여 의료 소비자들의 신뢰를 증대시킬 수 있길 기대합니다.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한의학을 너무 모른다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앞으로 나올 표준임상진료지침이 저같은 사람들을 위한 한의학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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