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으로부터 인간 본연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과정

이진경

육식(이미지 출처:http://www.kyobobook.co.kr/)

저자 : 제레미 리프킨 / 출판 : 시공사 / 발매 : 2002.01.31

 미국의 와이오밍 주, 아이다호 주, 몬태나 주에 걸쳐 있는 거대한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미국인들의 자랑이며 그들이 귀하게 여기는 국립공원이다. 너른 대지 위에, 오랜 시간에 걸친 석회함의 용식작용이 만들어낸 장관들은 그 곳의 야생동물들과 함께 미국의 소중한 자연 자산이다. 도로를 따라 그 곳에서 차를 몰다 보면 간혹 버팔로 무리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공원 관리 측에서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적을 울리거나 빠른 속도로 주행 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배려와 자연 보호 노력을 보면서 귀감을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흔히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이라 칭하며 국립공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하는 버팔로들은 <육식의 종말>에 의하면, 광활한 미국의 평원에서 자유롭게 야생의 삶을 유지하며 인디언들과 함께 살았던 인간과의 오랜 공생적 개체였다. 그러나 유럽으로부터 시작되어 미국 동부와 텍사스 지역을 중심으로 행해진 소 사육과 도살, 그리고 육식습관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집단 버팔로 학살을 만들어냈다. 결국 인디언과 함께 이방인들에 의해 쫓겨난 이들은 각각 국립공원, 인디언 거주지역으로 내몰려 과거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잃어버렸다. 소고기 한 점에 많은 생명의 눈물과 사람들의 한숨이 담겨 있는 셈이다.

소고기 소비를 위해 일어나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태는 소고기의 생산, 도축, 소비 등의 전 과정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다. 몇몇의 농장주와 거대기업이 독점하는 소 사육과 도축의 과정은 인간이 직접 자신의 먹을거리를 손질하곤 했던 미덕을 없애버렸고 무엇인가를 먹는 안식과 치유의 행위를 자본주의 속 거대한 소비의 톱니바퀴 안으로 밀어넣게 되었다. 이 책에서 짧게 언급된 한국의 급격한 소고기 소비 증가는 소고기 소비와 수반되는 문제점들이 서양사회 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거대 자본을 가진 농장주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미국 서부의 목축업 종사자들, 소의 비대화를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곡물을 먹이며 움직임을 제한하고 투약하는 성장 촉진 주사, 가난한 자들은 저급한 고기를 싼 값에 먹는 것에 만족하지만 가진 자들은 육식문화를 거부하고 마른 몸을 추구하는 행태 등은 낯선 것이 아니며 놀랍게도 우리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유무역의 이름을 내걸고 우리 땅에 들어오는 소고기들은 몇 개의 유리한 산업 분야에 대한 FTA 조약의 대가이며, 일부 한국의 소고기 소비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소고기 생산과 운송과정에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양질의 고기를 저렴한 값에 먹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소위 보다 더 큰 양적 이익을 창출한다 일컬어지는 자동차가 한쪽에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도, 그 이익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식량’과 ‘생존’ 의 과정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이다.

결국 <육식의 종말>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고기를 먹는 행위를 넘어선 이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이익의 수혜대상’인 인간이 본인으로부터 소외되고 생명 자체에 대한 존엄성이 경시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육식은 현재 우리 삶의 양태 그 자체이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집요하게 육식에 대해 접근하며 고찰하는 저자의 자세는 어쩌면 ‘육식 시스템’ 안에서의 인간으로서, ‘나’는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생명성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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