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생명윤리정책 협동과정
박사 3학기 김지경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올해 초 통과었습니다. 요즈음 활발하게 진행되는 심포지엄이나 공청회에 가 보면, 이 법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환자의 자기결정’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곤 했습니다. 이는 생명윤리의 4원칙 중 하나인 자율성의 원칙과 관련이 있는 가치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을 제도화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을 보장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생명윤리학 관련 책이나 논문에서 보는 것과 달리 대한민국에서 환자의 의사결정이란 그의 가족의 생각과 지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앞둔 환자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웹툰으로 주목을 받고 얼마 전 완간본을 낸 만화책 『아만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스물 여섯 말기 암환자인 주인공은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덤덤한 태도를 갖지만(고통스러운 순간은 주로 환자의 꿈으로 이동하는 이야기의 구조를 살림), 독자가 생생하게 고통을 공감할 수 있도록(암 투병기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환자 입장에서의 고민들을 자세히 설명함)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제가 특별히 웹툰을 선택했던 이유는, 장르 성격상 환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생생한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되는 웹툰에는 매 회마다 독자들이 댓글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작품을 통해 상당한 위로를 받았는데, 특히 암환자가 겪는 실제 모습, 고통 등을 잘 전달했다는 점에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저 역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암투병과정을 보면서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특히 제가 유심히 보았던 부분은 환자의 가족을 그린 에피소드였습니다. 작품 속 그의 가족은 다소 무심하고 퉁명스럽게 나옵니다. 의사가 병의 진행상태나 가망에 대한 잔인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날이면 오히려 희망을 가져라, 힘내라, 활짝 웃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픈 아들을 병실에 두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 방에 들어가서야 소리내어 서럽게 울고, 자신이 대신 못 아픈 것을 자책합니다. 환자도 가족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불안하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하고 있습니다. 이를 악물고 병과 싸우지만 정말 힘들 때는 가족 앞에서만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한 거짓말은 뻔히 알고도 속아주는 과정을 통해 시련을 버티는 힘이 됩니다. 차라리 투병 과정 중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픕니다. 어찌 보면 죽음은 그 자체의 고통이라기보다 관계에 대한 미련, 특히 그것이 전 생애를 함께 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고통인 것 같습니다. 가족을 가족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피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족은 그렇게 서로를 기억해주는 존재입니다.
죽음의 사건은, 개인의 고통이 아닌 가족 모두의 고통입니다. 그 고통이 떠난 자의 몫이기보다는 남겨진 자의 몫이기 때문에 가족 입장에서 죽음은 분명히 박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호자’라는 역할을 수행하느라 환자만 최우선으로 돌보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이 법안의 안정된 정착을 위해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말할 수 없는 환자를 대신해서 가족은 그의 의사를 헤아리고, 그의 생애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환자의 끔직한 상황은 치료를 종결하도록 하고 싶지만, 환자 가족은 그를 놓지 않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상황은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환자의 죽음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주체로서 가족은 환자의 죽음에 대한 결정을 자신이 했다는 점에 대해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이 법안이 자연스럽게 호스피스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호스피스에서는 환자는 물론 그의 가족이 겪는 심리적, 사회적 어려움을 도와 그들의 고통을 보살피는 역할을 합니다.
무심하고 일상적인 가족이라도, 그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지막이 평안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죽음은 혼자 경험하는 일이지만, 가족은 그를 지켜봐주고 애도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아프고 상처받는 보호자일 뿐입니다. ‘태어날 때는 내가 울고 모두 울지만, 죽을 때는 내가 웃고 모두가 운다.’고 하는 어떤 말처럼, 가족은 한 인간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환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록 판타지일지라도, 저는 그 판타지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특히 이 법안에서 가족의 고통에 대해 조금 더 고려해서 환자의 자율적 의사결정이란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환자와 그의 가족의 관계나, 그들의 케어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 김보통 지음, 『아만자』, 예담, 2014.
- http://webtoon.olleh.com/web/times_list.kt?webtoonseq=34
- 네이버 지식백과 ‘웹툰’, (만화애니메이션사전, 2008. 12. 30.,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박연옥 지음,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말기환자 가족의 경험』, 한국학술정보(주), 2008.
- 김인선 지음, 『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 서울문화사, 2011.
“가족을 가족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피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었기 때문”이라는 표현은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저도 젊어서 독신 생활을 잠시 했었는데,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몸이 아플때만큼은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던 기억이. 잠시 아픈 사람도 그럴진데, 가족이 없는 말기 환자의 마음의 고통은 참 대단할 것 같습니다. 생각할 것이 참 많은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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