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함께 사는 세상!

생명윤리정책협동과정 박사과정 김지경

 

생명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자연스럽게 ‘약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노인, 장애인, 어린이, 극빈층 등……. 연약한 존재의 생명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실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자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우리는 동물도 생명존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럽니다. ‘인간들 살기도 팍팍한데, 동물들까지 보살펴야 하는가.’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동물 보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인간을 무시하고 동물을 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욱 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동물의 생명권은 존중받아야 합니까?’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박애주의자가 아닌 합리주의자로서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동물 보호법’은,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의 방지 등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동물의 생명보호, 안전 보장 및 복지 증진을 꾀하고,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조항에서 보면 동물은 인간이 보살펴야 할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단순히 동물을 보살핌의 대상이 아닌,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동물해방’을 쓴 피터 싱어입니다. 공리주의자인 피터 싱어는 쾌락과 고통이 도덕적 판단의 주요 근거임을 바탕으로 도덕적 고려대상은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들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도덕적 책임감의 정도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국내 철학자 최훈은 인간과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동물에게 ‘직접적인’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뭔가 무리한 이야기가 아닐까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시도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시도는 도덕 공동체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이다. 도덕 공동체의 경계 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구성원들은 모두 도덕적 지위를 부여받는데, 그들이 어떤 속성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들, 곧 동물 권리론과 동물 해방론은 모두 도덕 공동체에 의심의 여지없이 속한다고 생각되는 구성원들이 어떤 속성을 공유하는지 살펴보는 방법을 쓴다. 그런 전형적인 구성원은 인간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애초에 모든 인간을 도덕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권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흑인,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이 그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 동물 권리론과 동물 해방론은 그들이 어떤 속성을 공유하기에 도덕 공동체에 들어오도록 허락받았는지 찾는다. 그리고 그 속성을 인간 아닌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여, 만약 가지고 있다면 동물들에게도 도덕 공동체의 멤버십을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피터 싱어나 최훈이 볼 때, 동물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도덕적 고려의 조건이 쾌락과 고통 인식 능력이라면 당연히 동물도 도덕 공동체에 포함됩니다. 과거 흑인을 배제하고 여성을 배제했던 역사에서 인간의 도덕적 사유가 진보했듯이, 동물을 우리의 도덕적 고려대상에 포함시키는 것도 진보의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지금처럼 동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장 고기를 끊어야 하는가.’ 하는 실천적인 압박(!)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비판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동물을 우리의 도덕적 판단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동물들이 고통을 피하고 싶고,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고, – 사육 과정에서 어미와 새끼를 떨어뜨려 놓는 일은 흔하다는 측면에서 – 자연적인 환경에서 본성을 누리며 살고 싶은 동물의 욕구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존중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사실 저는 동물 생명권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무척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다음 주에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일주일동안 우리 집에 머물 예정인데, 다른 무엇보다 제가 고양이를 어떤 마음으로 대할 것인지 난감합니다. ‘너는 동물이고, 나는 인간이야.’하고 근엄하게 (하지만 사실은 다소 긴장하며) 그 대상을 바라보며 마음의 벽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쉽게 고양이는 저에게 인사하고, 교감하고자 하겠지요. 저는 동물 사랑의 마음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머리로 먼저 고양이 사랑을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글을 쓰며 제게 생긴 확신에 찬 결심 하나는, 고양이의 즐거움을 늘려주고, 불편함을 줄여주도록 하는 노력으로 고양이가 보살핌을 넘어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반려3

 

 

<참고문헌>

동물보호법 제 1조 (개정 2015. 1. 20, 법률 제13023호)

피터싱어 (2012), 『동물해방』, 김성한 옮김, 연암서가.

최훈 (2015), 『동물을 위한 윤리학_왜 우리는 동물을 도덕적으로 대해야 하는가?』 사월의 책, p.40.

최훈(2014),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육식은 동시에 옹호 가능한가?”, 「철학탐구」 제 36집,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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