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무리 = 삶의 완성

무릇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그에게 주어진 생애 속에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목적에 대해 각각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치는 상하가 있을지언정, 우리는 그들 각자가 고유한 목적의 성격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은 영양섭취를 통한 성장, 동물은 감각을 따르는 쾌락, 그리고 인간은 이성적 사유 활동을 통한 실천적인 삶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하였는데요.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할 때, 우리는 “훌륭하다. 좋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의 좋음에 대해 연령별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삶의 목적은 개개인마다 너무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함 속에서도 연령에 따라 구분이 되는 양상이 있습니다. 인간 생애를 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로 구분한다고 할 때, 저는 오늘 노년기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전체 인구 중 65세이상 인구 비율이 7~14% 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5%라고 하니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aged society) 진입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65세 어르신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을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쩐지 어색하지요. 노인들 역시 그들의 소득, 건강, 가치, 생활패턴 등에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이렇기 때문에 노인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묶어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심스럽다는 가정을 먼저 하고) 노년기는 인체적 기능 뿐만 아니라 심리적 기능 역시 노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감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훌륭한지에 대한 고민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물론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자명한 진리에 대해 우리는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 삶의 마무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얼마 전 우연히 제 생애의 마지막을 인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deathclock.com 을 통해서였는데요. 여기에 생년월일, 성별, 키, 몸무게 등을 입력하면 여러분의 남은 인생이 수치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초 단위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마지막이 있다는 것은 진리이지만, 그것은 젊고 건강한 시절에는 자각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 수치를 보고 나서야 제 생애 마지막에 대해 진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야 이런 사이트의 수치를 통해 삶의 유한성을 겨우 인식할 뿐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몸의 퇴화를 경험합니다. 그것을 막고 되돌리려 애쓰지만 불가능합니다.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아야 하는 심정을 생각한다면, 노인들의 고민에 대해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인들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신체적 노화의 과정입니다. 주름, 백발 등 외적인 노화는 물론 각종 만성질환인 관절염, 동맥경화, 골다공증 등 신체기능도 점차 감퇴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는 그들이 젊었을 때의 체력을 따라갈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이는 노인의 심리적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적 능력이 감퇴하면서 기억력, 학습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이 이전보다 어려워지고, 이는 주변 가족 등에게 수동적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의존성을 증가하게 합니다. 예전의 당당함과 능동적 삶의 태도를 갖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존중받던 능력은 걱정스러운 처지가 됩니다. 또한 배우자와 친한 친구의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인 두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은 개인의 관심이 미래에서 과거로 옮겨지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에게는 지나온 삶의 여정과 그들을 통해 맺은 관계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생애에 대해 통합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과거에 미처 풀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여 용서와 화해 인정 등 마음의 안정을 이룰 수 있어야 현실의 삶이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회피하려고 하는 성향들이 있는데, 특히 한이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만큼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문제는 노인들의 현재 삶을 힘겹게 합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실제로 최외선은 그의 연구를 통해, 노인들은 현재 삶에 대한 태도보다, 과거나 현재 수용을 통해 자아통합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녀는 과거나 현재 수용을 통한 자아통합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노인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에 특히 안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노인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입니다. 특히 고령화 사회의 가속화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행복하고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한 사회의 건강함과도 연결이 될 것입니다.  노인이 감당해야 할 이런 변화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참고문헌>

  1. 아리스토텔레스. 이창우, 김재홍, 강상진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제이북스. 2006.
  2. 장 아메리. 김희상 옮김. 늙어감에 대하여_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돌베개. 2014.
  3. 아이라 바이오크. 김연조 옮김.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 물푸레. 2010.
  4. 홍숙자. 노년학개론. 하우출판사. 2010.
  5. 최외선. ‘노인의 자아통합감과 죽음불안에 대한 연구’. 한국노년학. 한국노년학회. 2007.
  6. deathc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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