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정책협동과정 박사과정 김지경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될 만한 가장 위험한 생각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트랜스휴머니즘’이 미래의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첨단 과학의 발전, 특히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본성마저도 변화시키는 영향력 때문에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우리의 본질을 위협하며,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인간의 후예, 즉 포스트휴먼의 새로운 역사를 예고한다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이 위험한 생각을 막을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기꺼이 반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재보다 나은 존재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에 잘 견디기 위해서, 노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정신적인 강인함을 갖기 위해서 등. 인간은 스스로를 강인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추구해왔습니다. 기존 정의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나 진화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이 기존의 인간을 규정하는 어떤 정의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때, 트랜스휴머니즘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은 인간의 능력이 진화의 방향을 정의하고, 제어하지요. 오늘은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스트휴먼’은 그 기본적인 능력이 근본적으로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인간의 주요 능력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의 능력에서 현재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를 엄청나게 넘어설 경우, 이를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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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포스트휴먼은 완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일 수도 있고, 신체를 버리고 슈퍼컴퓨터 안의 정보 패턴으로 살기를 선택한 업로드의 형태일 수도 있고,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작은 개선들이 축적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생물학적 인간이 포스트휴먼이 되고자 한다면, 유전공학, 신경약리학, 항노화술, 컴퓨터-신경인터페이스, 기억향상약물, 웨어러블 컴퓨터, 인지기술과 같은 다양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두뇌나 신체에 근본적 기술 변형을 가해야만 할 것입니다. ‘포스트휴먼’은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법한 슈퍼 인간의 모습을 서술한 기술적인 용어입니다.
이와는 달리 트랜스휴머니즘은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화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운동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말하자면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화가 바람직하거나 혹은 그렇게 변해야 한다는 권유나 당위의 규범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일종의 평가적인 함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케빈 워릭(Kevin Warwick)은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는 단지 시간과 장소의 조건에 따르는 우연적 운명일 뿐이다. 나는 우리가 그것을 바꿀 힘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선언합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바꾸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트랜스휴머니스트입니다. 1998년 세계 트랜스 휴머니스트 협회(The World Transhumanist Association)가 설립되었고,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문」이 완성되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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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건들은 아직도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세계관에 대한 표준적인 정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공식적 정의에 따르면 트랜스휴머니즘이란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성적, 육체적, 심리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확대함으로써 인간 조건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의 가능성과 그 바람직함을 긍정하는 지적, 문화적 운동’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통적 방법으로 인간 변화나 발전에 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이미 한계를 보였으며, 가속화된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선택지를 갖게 한다고 합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 발전의 미래를 낙관하고, 과학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신체나 마음을 향상하고자 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옹호합니다. 이들은 수명 연장이나 인지적 향상 기술의 개발에 동의하며, 아이의 출산을 위해 새로운 의학적 재생산 기술을 활용하고, 자식들이 갖게 될 특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지향이나 접근 태도, 미래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평가 문제 등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견해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 중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던 후쿠야마의 논의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쿠야마는 트랜스휴머니즘을 반대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적하는 문제는 ‘평등’의 파괴입니다. 후쿠야마는 트랜스휴머니즘이 모든 인간은 피부색이나 외모, 지능의 차이와 무관하게 동등한 공통의 인간 본질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모두 동일한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가정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토대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 중 누군가가 향상을 통해 지금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된다면, 우월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에 그 내재적 가치나 권리에서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등의 문제는 향상기술 접근 문제에서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향상 기술 적용에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기술의 수혜자는 대부분 부자나 권력층일 것입니다. 기술접근의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인간향상 기술을 시도할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며, 이로 인해 인간 삶의 중요한 가치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후쿠야마는 인간은 장기적인 진화의 결과로 산출된 대단히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여러 특징들은 그것이 좋건, 나쁘건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공격적이거나 호전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스스로 방어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만약 우리가 질투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좋은 특성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특성들은 제거하거나 향상시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 가지 특성만 집중할 경우, 이는 불가피하게 다른 특성의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최종 결과가 어떻게 산출될지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나노기술, 생명기술, 정보기술, 인지과학의 융합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자연이나 우리 스스로에 대한 가공할 통제력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파국적인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지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은 이 논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위험성에 대한 정확하고 정당한 근거와 예측이 담보되어야 하고, 보다 포괄적인 담론이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 신상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_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아카넷, 2014.
- 박영숙, 호세 꼬르데이로, 『2020 트랜스휴먼과 미래경제 _ 트랜스휴먼으로 진화하는 시대, 우리의 성공 대안』, 교보문고, 2006.
- 프랜시스 후쿠야마,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 송정화 옮김, 한국경제신문, 2002.
- 이화인문과학원, 『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3.
- 앨런 뷰캐넌, 『인간보다 나은 인간 _ 인간 증강의 약속과 도전』, 심지원박창용 옮김, 로도스, 2015.
후쿠야마 교수가 트랜스휴머니즘에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운 논거는 물론 설득력이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논거는 트랜스휴머니즘 뿐만 아니라 의과학기술 전반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는 너무 일반적인 논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트랜스휴머니즘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제점은 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지는데, 잘 떠오르지는 않네요. 역시 쉽지 않은 이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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