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icide Survivor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5기 이영신

 

suicide survivor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직역하면 자살 생존자로, 자살을 시도하고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뜻일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단어는 사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게 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자살사별자라는 뜻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유가족’이라는 뜻으로도 풀이가 되는데 비단 이 단어 안에 가족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자살자의 주변 지인들이 겪어야하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였다’, 혹은 ‘내가 지켜주지 못했다’라는 원죄의식 속에서 ‘survive’해야 하는 상황을 말입니다.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3조 제1항에 따르면 국민은 자살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살사별자에게는 이러한 권리마저 없어 보입니다. 자살은 자살자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옆에서 경험하고 남게 되는 자살 사별자들에게는 매우 큰 심리적 충격을 동반하며 시간이 지나도 슬픔과 고통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고통을 겪게 하는 사건입니다. 자살 사별자들은 자살자 못지않게 자살시도나 높은 자살사고를 경험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으로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사회부적응 등의 어려움을 보이는 심리적 고위험군에 속하지만 외부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대로 위험한 상태에 노출되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는 가족 구성원을 가진 가족이나 사고, 타살, 질병으로 인한 사별과는 다른 자살을 한 가족 구성원의 남겨진 가족들은 자살을 당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기회보다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죄책감과 자살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사회적 편견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문화적인 배경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자살자와 사별의 경험에서 겪는 슬픔은 다른 일반적인 사별과정과는 다르게 더 오래 지속되며 애도과정에서도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내합니다. “친구에게 말하고 싶어도 ‘오죽 했으면 자살했을까’라는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볼 것이 겁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저런’이라고 하지만 자살했다면 ‘왜’라고 말한다”라는 자살유가족들의 발언을 들으면 이들의 애도과정이 비밀스럽고 고립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문화적 이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자살 유가족들은 자살자 가족의 죽음 이후 최소 3년에서 20년이 지나도 자살자와의 사별의 고통을 가슴 깊숙이 묻어놓고 되새겨가며 정서적 괴로움을 그대로 안고 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로 인한 사별자들은 자살자와 주변사람들에게 분개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심한 죄책감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이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가로막아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거나 도와주려는 손길도 거절하게 만듭니다. 이로써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사회적 지지망을 구축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가족 내부에서도 죽음의 의미를 둘러싼 의문들 때문에 갈등이 심해지거나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 해당 주제를 회피함으로써 구성원간 부정적인 감정들을 강화시킵니다. 자살 사별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이면서도 개인적 단계, 가족구성원의 단계, 사회적 단계라는 모든 단계에서 극복하기 힘든 복합적인 고통을 결국 혼자서 감내해야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는 1만3,513명로,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최소 5~10명이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자살 유가족 지원체계 확립을 위한 기초연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살 유가족은 8만3,000명인데 친구 등 지인까지 포함하면 심리적인 외상을 겪은 수는 눈덩이만큼 불어날 것입니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심리부검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31.8%가 가족, 친지, 친구, 선ㆍ후배 등 가까운 사람의 자살을 경험했고, 가까운 사람의 자살을 경험한 사람(24.0%)은 그렇지 않은 사람(17.7%)보다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살을 심각히 생각하는 비율도 경험자(21.3%)가 그렇지 않은 사람(9.9%)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현대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닌 만큼 자살 사별자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적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 관심과 더불어 사회, 제도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경우 이 같은 장치들이 상당히 잘 마련되어 국비 펀딩 밑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사별자 자조모임이 전역에서 다수 운영되며 전화상담, 로컬 그룹미팅, 컨퍼런스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시행하며 자살을 개인이 아닌 국가의 문제로 접근하며 법적근거에 기초한 자살유가족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동법에서는 자살 미수자에 대해서 다시 자살을 도모하지 않도록 적절한 지원을 할 것과 더불어 자살자의 친족들에 대해서도 국가 및 공공단체가 자살이 이들에 미치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통해 유가족이 원하는 지원을 조사를 통해 맞춤형으로 실시하려고 노력하며 지역중심으로 자살 유가족관리 등 자살예방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자살 사별자에 대한 지원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 예산도 거의 없고, 이들을 관리해야 할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증진센터도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살 유가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 주고 있는 곳이 전국 시ㆍ군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증진센터입니다. 하지만 이들 기관 중 자살 유가족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십여 개에 불과하고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담당자가 대부분 1~2명으로, 유가족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고 지역사회나 주위에 신뢰를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한데 모임 담당 상담사가 자주 바뀌고 상담에 경험이 없는 상담사가 담당을 하는 등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있는 자조 모임도 자살예방센터의 자살예방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어 일정한 성과와 실적이 전제되지 않으면 모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예산확보가 무엇보다 선결과제가 되겠지만 자살 사별자에 적재적소의 도움의 주려면 이들의 실태를 보다 분명하게 알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11조와 동법 시행령 4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전국을 대상으로 자살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시·도지사는 필요한 경우에 관할 지역을 대상으로 자살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조사가 자살유가족의 협력이 부족하여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에 대해 지원하고 슬픔을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상호 이해하고 협력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자살 사별자들을 이해하고 자살이 이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만큼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자조모임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지역 중심적인 예방정책을 펴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도입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이미 상실한 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을지라도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여 상실에서 오는 복합적인 고통을 최대한 완화하고 치유와 회복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남은 삶에서 의미를 구축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논문>

칼라 파인, 『너무 이른 작별』, 궁리, 2012

김영아, 변재원(2016), 자살 유가족(suicide survivors)에 관한 국내 연구의 동향과 과제, 한국심리학회지 43-63 (21 pages)

강명수(2015), 자살 유가족을 위한 가족 상담과 치료적 개입, 연세상담코칭연구 4, 2015.09, 9-31 (23 pages)

박혜선(2015),자살유가족지원 현황과 과제,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 학술발표논문집 , 2015.05, 159-173 (15 pages)

Suicide Survivor”에 대한 1개의 생각

  1. 좋은 지식 많이 얻었습니다. “cancer survivor”라고 하면 암을 극복한 자이지만, “suicide survivor”는 전혀 다른 뜻이었군요.

    우리 사회가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자살자의 숫자가 줄어들기를 바라고, 그런 때가 오기 전까지는 suicide survivor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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