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윤리정책협동과정 박사과정 김지경

 

다사다난한 2016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올 한해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 중에서 특히 12월 한 달 동안 저를 가장 긴장시켰던 사회적 이슈는 ‘인플루엔자 환자 급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뉴스에서 독감이니 수족구니 어린이들에게 전염병이 돈다는 소식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긴장이 됩니다. 특히 이번 독감유행의 양상은 이전의 양상과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는데요. 첫째로 독감의 발생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대부분 1월에 유행주의보가 발령되는 기존 독감과 달리 올 해는 약 한달 이상 이르게 주의보가 발령했습니다. 전염성이 강하다는 면에서,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하는 독감 유행은 많은 이들을 우려하도록 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등교 중지’ 조처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인플루엔자 감염의 연령층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번 독감은 65세 이상 노인층에서 감염이 덜하고, 학생들에게서 크게 확산되었는데요. 이 집단을 비교해 보면 노인층은 무료예방 접종대상이어서 예방접종률이 높은 반면, 학생층은 예방접종률도 낮을 뿐 아니라 주로 집단생활을 한다는 차이를 갖습니다. 이런 독감유행의 양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에 대해 고민하도록 합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가?”에 대한 각자의 답변에 관한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보면 예방접종에 관한 일정표가 있습니다. 저는 이 일정들을 매우 충실하게 수행하였는데요. 특히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에게 안전한 게 제일이지.’라는 생각이 일종의 강박이 되어서 접종에 관련한 모든 일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필수 접종과 선택 접종을 구분한 정부의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정표에 나와 있는 모든 예방주사 접종을 하였습니다. 주어진 접종을 충실히 실천하고 안도를 한 후에야 나와 다른 선택을 한 부모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방접종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예방접종에 대한 얼핏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저의 생각과 매우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우리에게는 유사점이 있었습니다. 예방주사를 거부하는 부모들도 ‘아이에게 안전한 게 제일이지.’라는 생각이 일종의 강박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참,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eb%a9%b4%ec%97%ad%ec%97%90%ea%b4%80%ed%95%98%ec%97%ac%ec%9c%a8%eb%9d%bc%eb%b9%84%ec%8a%a4  그러던 중에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을 한 권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 작가 율라 비스Eula Biss가 쓴 『면역에 관하여』 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출산을 한 후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백신이 아이를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백신과 예방접종이 실제로 아이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원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노력을 합니다. 이 책은 과학서적으로 분류되어있지만, 신화와 역사와 문학의 내용을 통해 저자 나름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한 달 동안 ‘독감과 예방접종의 문제’가 화두였기 때문인지 율라 비스의 논의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면역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러분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호하다protect>라는 영어 단어의 유의어를 찾아보면 <shield>와 <shelter>와 <secure> <inoculate>가 나옵니다. 율라 비스 역시 출산 이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녀의 실존적 고민은 자연스럽게 ‘과연 아이에게 예방 접종을 맞혀야 할까?’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예방접종이 과연 감수할 가치가 있는 위험인가 아닌가의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부모들은 이 문제에 대해 첨예하게 론을 벌인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독감을 앓는 동안 유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백신을 맞힐 계획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아이가 백신을 맞은 뒤 밤새도록 너무 아파했기 때문에 다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백신의 위험, 효과에 대해 언론은 무분별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상당한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무능, 대형 제약회사들이 의학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하도록 하였습니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에 모두 동의했지만, 그런 걱정이 암시하는 세계관은 심란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백신접종에 대한 우리 내면의 은유 작동기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은유를 결정한다. 그리고 우리의 은유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제임스 기어리의 말을 시작으로, 율라 비스는 백신 접종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살펴봅니다. 영국인들은 <한 대 맞는다. jab>고 표현하고, 미국인들은 <한 발 맞는다. shot>고 표현합니다. 19세기에는 백신의 상처를 <짐승의 낙인>이라고 하였고, 영국 성공회 대주교의 1882년 설교에는 백신을 죄를 주입하는 것으로서 <타락, 악덕들의 앙금, 못된 욕구들의 찌꺼기가 뒤섞인 고약한 혼합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읽어내는 은유는 압도적으로 두려운 것들, 거의 늘 침해와 타락과 오염을 암시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백신 접종이 대개 흉터를 남기지 않는 지금도, 그것이 우리에게 영구적인 낙인을 가한다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백신이 자폐증, 면역 장애 질병들(당뇨, 천식, 알레르기 등)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두려워합니다. 백신의 재료에 대해서도 두려워합니다. 요즈음 백신은 대부분 무균 상태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끔찍한 수은, 에테르, 알루미늄, 부동액 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두려움에 대해 작가는 묻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백신 접종이 질병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라고 믿는 걸까요?” 하고 말이지요.

질문에서 눈치채셨겠지만, 그녀는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 주장은 단지 내 아이의 건강을 위해 백신 접종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백신의 효과를 따질 때 그것이 하나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집합적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봅니다. 그리고 백신 접종을 면역에 대한 예금으로 상상할 때 썩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면역으로부터 보호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백신 접종이 가능한 다수의 사람들의 능력을 기부하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 면역herd immunity의 원리이고, 집단 접종이 개인 접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 집단 면역 덕분입니다. 혈액과 장기기증이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면서 몸들을 넘나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인 셈이지요.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웃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를 거부하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어적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체 의학에 매력을 느끼곤 하는데요. 율라 비스는 그 이유가 대체 의학이 제공하는 대안 언어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오염되었다고 느낄 때 대체의학은 <정화>를 제공하고, 우리가 부적절하다고 느끼면 대체의학은 <보충제>를 제공하며, 우리가 산화를 걱정할 때 대체의학은 <항산화제>로 안심을 시킨다고 합니다. 이런 은유들은 우리의 근본적인 불안을 달래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의학은 강력한 강장제는 천연natural이라는 단어입니다. 자연주의자 웬델 베리는 ‘인간의 환경이 인공적인 것이 되어 갈수록 ‘자연’이 점점 더 가치 있는 용어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백신 없이 질병에 대한 면역을 발상시키도록 만든다는 발상에 매력을 느낍니다. 이 논의의 연장선에서 얼마 전 KBS의 ‘비타민’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었던 수두파티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나옵니다. 수두파티는 미국과 호주에서 자연주의 육아를 신봉하는 엄마들이 수두에 걸린 아이가 있으면 파티를 열어 자신의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수두를 옮겨 면역력을 기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자연주의를 신봉하는 부모들의 무지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율라 비스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산업 사회 이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탐닉하는 것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야생의 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것들은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레이켈 카슨이 말하는 ‘완벽한 균형을 이룬 자연계’라고 묘사했던 것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수두 바이러스가 야생형과 백신 바이러스라고 불린다면, 이 부모들은 야생형이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적인 삶을 삶과 동시에 공적인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특히 몸이 사적 경계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비스는 출산과정에서 수혈을 받았던 경험을 연관짓습니다. 그 몸의 경계는 투과성이 훨씬 더 높으며, 그녀 자신의 몸에 가해진 폭력이 가장 극심했던 분만 중에 오히려 그녀의 몸이 다른 몸들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서로의 몸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몸은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라면 모조리 공격하는 전쟁 기계가 아닙니다. 적절한 환경에서 다른 많은 미생물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정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고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내부를 지키는 힘은 공동체가 힘을 모을 때 나온다는 그녀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예방접종을 통해 공동체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점이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새해에는 여러분 각자,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아름다운 면역 정원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참고문헌>

  1. 율라 비스 (2016). 『면역에 관하여』. 김명남 옮김. 열린 책들.
  2. 한겨레신문기사 (2016. 12. 15.)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74842.html
  3. 조선일보 기사 (2016. 12. 16.)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6/2016121602098.html
  4. 비타민 [650회]. ‘예방접종, 꼭 맞아야 하는가?’ (2016. 11.24.) 20:55. KBS 2TV

 

 

독감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한 1개의 생각

  1. 초등학교 1학년인 제 딸 아이가 얼마 전에 왼쪽 어깨에 BCG 예방접종을 맞고 왔는데 그 흉터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나이가 더 많은 우리 아들은 지금은 어딘지 기억도 안나는, 흉터가 안보이는 자리에 맞은 백신을 딸 아이는 왜 저런 자리에 놓게 그냥 놔두었냐고 제가 집사람을 야단치는 바람에 약간의 가정 불화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제 본업으로 돌아와서 의료법 측면에서 본다면 “백신”은 국가의 강제권과 관련하여 미국에서 매우 자주 언급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백신의 강제 접종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는 별로 못 본 것 같습니다만, 지난번 MERS 사태처럼 전염병 유행시의 강제격리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으므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렇듯 “백신”은 법학자이자 아이의 아빠인 저에게 매우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주제라서 늘 흥미 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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