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사태가 보여 준 우리 사회의 취약성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윤리정책협동과정 박사과정 김지경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 사태가 진정되는 것 같더니 다시 뉴스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말 충북 음성에서 시작하였으니 벌써 4개월 차에 들어서고 있네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조류 독감을 역대 최악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조류독감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조류독감의 사태는 관련 종사자들처럼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일반인들도 체감할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지요. 특히 계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집집마다 계란을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21세기에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재앙이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바이러스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 사태에 대처하는 방식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을요. 오늘은 조류독감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 곳곳의 문제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2162612499_de04a57e23_b

 

조류독감이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닭, 오리, 야생조류에서 발생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드물게 사람에게서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로 인해 오염된 먼지, 물, 분변 등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전파가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부터 AI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아직 인체 감염 사례는 없습니다.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익혀 먹으면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조류독감의 성격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조류 사육 축사는 바이러스가 감염되기 위한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었고, 정부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또한 일반 국민들은 조류독감사태가 보여주는 사실과 무관하게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류독감 사태를 확산시키기 위한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이 아닐 수 없지요.

먼저 축사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치맥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닭 소비량이 많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한국인 1인당 닭 소비량은 연간 12.6kg라고 합니다. 삼계탕에 많이 쓰이는 6호(0.6kg) 닭을 기준으로 한 사람이 한 해에 21마리 이상의 닭을 먹는 셈이지요. 수요가 많은 만큼 국내 닭 사육의 규모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규모의 팽창만 갖추었지, 사육 환경의 질적인 향상은 이루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 마리만 AI에 감염되어도 삽시간에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밀집사육환경’은 조류독감의 사태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일반 양계장에서 닭 한마리가 차지하는 사육면적은 A4용지 크기보다도 작은 0.04㎡(20x20m) 정도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닭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지내고 있는 실정이지요. 게다가 감염된 닭은 주변 조류에게 바이러스가 바로 퍼질만큼 전염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전염성이 강하다 보니 같은 양계장은 물론이고 인근 양계장의 가금류까지 즉각 살처분해야 AI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AI는 이전에는 없었던 H5N6형 바이러스인 데다가 전파속도가 ‘빛의 속도’처럼 빨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이에 대처하는 속도는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점이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던 ‘정부의 무능함’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무능, 무기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국정 농단 정국에 매몰되어 초동 대응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메르스 사태와 같은 대재앙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10월 말 충남에서 최초로 고고(高高) 병원성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는데도 정부는 ‘올해는 AI가 없다고 안일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금류 AI 의심신고가 접수되었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틀 뒤에 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황교안 총리도 9일 후 의정부시를 방문한 뒤로 손을 놓았습니다. 이렇게 지체되는 동안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지방 단체와의 협력체계도 무너졌습니다. 바이러스를 잠재우지 못하는 소독약이 공급되었고, 일부 지자체는 허둥대%eb%ac%b4%eb%8a%a5%ed%95%9c%ec%a0%95%eb%b6%80던 사실을 숨기기 위해 허위로 방역 신고를 했습니다. 일시이동중지(standstill) 명령이 세 번 발동되었지만, 여러 농가가 이 점을 어겼고,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출하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먹통이 되는 사이에 AI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피해는 경제적 손실과도 직결이 되는데요. 초동 대응에 실패하지 못해 살처분 마릿수가 사상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면서 살처분 보상금에 대한 부담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살처분 보상금 추정액만 해도 138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날씨가 포근해지는 3월에도 AI가 기능을 부린다면 보상금은 천문학적 수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두려움과 그로 인한 행동들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의 살처분 피해는 알을 낳는 닭(산란계)에 집중되었습니다. 살처분 4마리 중 3마리가 산란계일만큼 비율이 컸는데요. 이로 인해 계란 생산의 기반이 붕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계란 수급이 어렵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곳곳에서 씁쓸한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대기업의 계란 사재기 논란부터 중간 판매상들의 매점매석 의혹, 계란을 훔친 도둑까지 계란 부족사태 속 어두운 소식들이 연속되었습니다. 일반인들도 계란을 구입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 AI 여파로 계란 공급량이 크게 줄면서 계란 가격이 오르기도 했지만,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사재기’를 하는 얌체 업체들이 가격 폭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사)재기를 하긴 했습니다. 여러 이웃집에서  계란 귀하다며 구매한 계란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계란을 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치킨업계는 이 사태가 참으로 억울하기도 할 듯 합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AI’, ‘치킨’을 치면 ‘AI 치킨 먹어도 되냐요?’라는 문장이 자동으로 완성됩니다. 식욕의 간절함과 공포의 급박함이 뒤섞인 이 질문은 사태와 무관한 우리의 두려움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실제로 같은 상황에서 아랍에서는 치킨 판매량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닭고기 값이 내렸을 때 실컷 먹자는 분위기라고 하네요. 문화의 차이가 참으로 크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처참하게 짓밟힌 조류의 권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리라 하는 것이 지나치면,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육식주의를 해부한다.>에서 저자인 멜라니 조이는 2001년 영국의 구제역 파동 때 일화를 소개합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동물 보호운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에 노출됐다고 판단된 소 수백만 마리를 도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암송아지 피닉스는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지만 감염방지를 위해 같은 농장의 소들과 함께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한 독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미소 품에서 살아있는 피닉스를 보고 담당 공무원들이 다시 주사를 맞추려고 할 때 농장 주인이 울면서 피닉스를 살려달가고 했다고 합니다.  신문에 ‘피닉스’라는 이름의 송아지 사진과 함께 이 사연이  실리면서 정책을 수정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식탁에 올라온 먹음직스러운 요리로서 닭고기를 생각하지, 그 생명체가 어떤 사육과 도축의 과정을 거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보았던 대규모 살처분 사진들은 그 자체로 잔인하고 끔찍한 현장이었습니다.

닭들에게 지난 2016년은 악몽같은 해였습니다. 사상 최악의 조류 인플루엔자로  수천만 닭들이 영문도 모른 채 땅에 파묻혔습니다. ‘닭의 해’ 2017년은 닭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참고문헌]

  1. 네이버 지식백과 ‘조류 인플루엔자,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6610&mobile&cid=51007&categoryId=51007
  2. 박형수 기자,” [시사 NIE] 한 마리만 감염돼도 삽시간에 퍼져…… 밀집사육이 부른 집단 살처분”, 2017.1.11. 중앙일보 기사
  3. 신소윤 기자, “[노 땡큐!] 별일 없이 산다.”, 2017.1.19. 한겨레21, 제 1146호 기사
  4. 김동문 기자, “조류독감은 신의 분노?”, 2006.5.18. 한겨레21, 제 610호 기사
  5. 이승호 기자, “A4용지보다 좁은 ‘닭 감방’ 다닥다닥…… AI 순식간에 퍼져”, 2017.1.5. 중앙일보 기사
  6. 중앙일보 사설 “살처분 1445만 마리 … 황교안, AI 재앙부터 수습하라.” 2016. 12. 14. 중앙일보 기사
  7. 멜라니 조이 지음,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 노순옥 옮김, 모멘토, 2011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