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밝아지는 삶의 의미

생명윤리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가 의도치 않게 ‘죽음’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죽음의 순간을 생각했을 때 삶의 가치나 생명을 존중하는 방식 등에 대해 더욱 명료해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러 책들과 논문들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제가 보는 책들마다 ‘죽음의 5단계’에 대해 인용하며 죽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생명윤리 논의의 장에 관련이 된 분들이시라면 아마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제시했던 죽음의 5단계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녀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겪는 심경의 변화를 ‘부정과 고립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의 5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주목할 만한 환자의 모습들을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그 방법과 고민할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책 <On Death and Dying>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퀴블러 로스는 종종 ‘death and dying lady(죽음과 죽어감의 여인)’ 또는 ‘creator of the Five Stages(다섯 단계의 창조자)’로 묘사되지만, 정작 그녀는 ‘life and living lady(삶과 살아있는 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합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만나지만, 그녀는 죽음의 과정 역시 삶의 한 부분이며 삶의 관점에서 죽음을 포용하려는 신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On Death and Dying>는 1965년 가을 시카고 신학교 학생 넷이 ‘인간 삶의 위기’를 주제로 한 자신들의 연구를 도와달라면서 퀴블러 로스 박사를 찾아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인간 삶에서 가장 큰 위기는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죽음의 문제에 대해 연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은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묻고 그들을 스승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이들의 인터뷰는 환자가 진단을 받은 직후에서부터 죽음 직전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말기환자 500여 명을 인터뷰하며 연구자들은 ‘어떻게 죽는가가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의 첫 번째 반응은 ‘부정과 고립’입니다.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많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오진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퀴블러 로스는 ‘부정’이야말로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 머무르게 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문제에 대한 건전한 반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의 욕구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환자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주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정의 태도는 대체로 일시적인 방어심리이며, 곧 ‘부분적 인정’으로 대체됩니다.

부정의 단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때, 그 단계는 분노와 광기, 시기, 원한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왜 하필 나일까?” 환자들은 질문하고 분노합니다. 환자의 이런 상태는 주변인들을 무척 힘들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분노는 종종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무작위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선고는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불가능한 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때 그들은 분풀이를 멈춥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고, 사랑받고 있으며,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환자들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반응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협상입니다. 환자들은 피할 수 없는 일을 조금 미루고 싶은 일종의 협상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하느님이 나를 데려가기로 하셨다면, 그리고 분노에 찬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면, 좀 더 공손하게 부탁해보면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입니다. 심리학적으로 협상은 죄책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나친 죄책감으로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처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환자는 우울을 경험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환자 한 명을 잃고 슬퍼하지만 시한부 환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을 잃어야만 합니다. 환자가 겪는 우울함의 감정은 시한부 환자들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충분히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그를 대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환자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할 때 환자는 보다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일련의 감정들이 지나고 나서 환자는 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행복한 상태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단계는 감정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긴 여행을 끝내고 편안히 쉬어야 할 때’라는 한 환자의 말처럼, 환자들은 피로해하고 기력이 떨어집니다. 분노를 마음껏 표출했고, 실컷 울었고, 조용히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두려움이나 환상을 털어놓았던 환자들은 이 단계를 훌륭하게 대처합니다. 무엇보다도 수용의 단계는 점진적인 분리 즉, 데커섹시스(decathewis, 세상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는 상태)와 함께 더 이상 양방향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단계로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시한부 환자들의 슬픔은 분명 경험의 한 부분이지만, 경험의 총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각 시기별로 맞는 섬세한 돌봄과 이해가 있어야만 삶의 마지막 과정이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특히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앞둔 시기에서 이 법으로 예상되는 많은 혼란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이 환자가 이 법안에 따라 자신의 삶의 마지막 과정을 결단할 용기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그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에 대해 이 책에서도 언급을 합니다. 환자는 병원 측에서 진실을 직접 말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반감을 갖고 있진 않지만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해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얘기를 듣지 못한 환자들도 친지들이나 병원 직원들의 태도 변화나 암시적인 말들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됩니다. 당사자를 문제에서 배제시키며, 그가 죽음에 대해 스스로 느끼고 지나가야 할 단계별 감정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쓸쓸하고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죽음의 사건은 생의 의미를 밝히는 시간입니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자신이 만난 시한부 환자에게 자신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시간이지만, 임종기를 앞둔 인간이 보여주는 삶의 의미에 대해 퀴블러 로스 박사가 가졌던 존중의 태도가 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1. http://www.ekrfoundation.org/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죽음과 죽어감』, 이진 옮김, 이레출판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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