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연구 주제는 무궁무진합니다. 그 중에서 의생명과학의 발전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특히 인체유래물 연구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인체유래물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이해되나요? 사실 저는 ‘인체유래물’이라는 말이 참 낯설었습니다. 인체유래물이란 인체로부터 수집하거나 채취한 조직, 세포, 혈액, 체액 등 인체구성물 또는 이들로부터 분리된 혈청, 혈장, 염색체, DNA, RNA, 단백질 등입니다. 인체유래물은 의생명과학 연구 발전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연구 대상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인체유래물을 많이 확보하는 문제는 의생명과학 발전에 분명히 기여하는 바와 상관관계를 이룰 것입니다. 인간을 연구의 대상으로 할 때 윤리적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는 만큼, 인체유래물에 대해서도 특별히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인간과 인체유래물 등을 연구하거나, 배아나 유전자 등을 취급할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위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고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으로 목적으로 한다.”(제1조)고 하여 연구를 위한 인체유래물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오늘은 인체유래물에 대한 윤리적 쟁점과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인체유래물은 정확히 연구 대상자의 몸에서 나온 자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체유래물의 소유권은 연구자가 아닌 연구대상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5년 이전까지는 연구 대상자의 서면동의 없이 인체유래물을 수집하고, 실험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연구진들은 ‘악의 없는 도둑’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연구자는 인체물질을 수집, 사용할 경우 피험자 본인에게 설명해야 하고, 기밀도 보호해야 합니다. 이 법률은 미국의 커먼룰(Common Rule)에서 설명하는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위한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법에 따르면 피험자가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강요나 부당한 영향력을 최소화할 환경을 보장하여야만 피험자가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의의 과정에서 연구 대상자를 보호하는 방식은 구체적입니다. 우선 연구에 대한 충분한 설명에 의해 동의를 해야 합니다. 연구자는 연구 대상자에게 연구에 참여할 지 말 것인지를 고려하기 위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강요나 부당한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환경에서 연구대상자나 법적 대리인으로부터 법적으로 유효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를 획득하여야만 연구대상자를 연구에 참여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를 획득하면서 연구대상자의 어떤 권리도 포기하거나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어떠한 권리포기용어도 포함하지 못하도록 하며, 연구자 등 구성원이 과실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어떠한 면제용어도 포함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적 보호는 연구 대상자가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억압 요소를 배제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연구대상자들이 자신의 인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부분은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동의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동의 과정은 분명 연구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 인체유래물 제공자가 그 권리를 포기할 것을 의미하는 조항들입니다. 이런 동의서 양식이 제도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문제가 분명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연구 대상자의 권리 포기 문제가 윤리적, 법적 고려를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인체유래물의 기증 동의서는 7개의 문항이 있는데요. 그 중 제 7항을 살펴보면 “연구결과에 따른 새로운 약품이나 진단도구 등 상품개발 및 특허출원 등에 대해서는 귀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라는 조항이 등장합니다. 해당 기증동의서의 내용은 외국의 바이오뱅크 윤리 기준을 차용하면서 들어온 조항이라고 합니다. 이 동의서 내용을 구성할 때 정부 관료들이 참고하면서 공론화 과정 없이 제도화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동의서를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설득을 한 후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면 권리포기 조항에 대한 거부감도 덜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체유래물에 대한 소유권과 재산권이 누구에게 귀속될지의 문제에 대한 뚜렷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해석이 모호한 문제이다 보니 공론화의 장이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 문제에 관련해서 이해당사자들 간의 논쟁, 소송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과정이 없이 연구 현장에서 동의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인체유래물 기증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미래의 풍부한 의생명과학의 발전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인체유래소재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관리하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가 중앙에서 관리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 인체 자원 중앙은행을 개소한 한국은 단위를 55곳, 거점은행 17곳으로 확대하면서 인체유래소재 중앙관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인체자원은행을 설치하고 있는데요. 인체유래물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국가 연구의 경쟁력이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조직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료인들이 기증자 발굴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진행 과정의 ‘투명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자가 협력하는 구조에서 각자는 누릴 수 있는 연구의 성과에 대한 기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일정 부분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연구의 성과가 한국의 의생명과학 발전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여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 권복규, 김현철 지음, ‘생명윤리와 법’, 이화출판, 2014.
- 송수연, ‘인체조직 기증 문화 정착, 병원과 의료인에서 출발’, 청년의사, 2016.05.03.
- 신미이, 박범순, ‘인체유래물 거버넌스: 바이오뱅크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제공자의 권리포기 문제’, 생명윤리정책연구 제 9권 제 3호, 2016.
- 박수헌, ‘커먼룰과 보관된 인체유래물에 관한 제공자의 권리’, 생명윤리정책연구 제 6권 제 1호, 2012.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해외언론동향, ‘미국, 새로운 연구대상자 보호책(안) 마련’, 2015.09.04. (http://news.sciencemag.org/policy/2015/09/u-s-finalize-new-human-subject-protections)
그렇습니다. 일단은 연구 목적으로 기증을 하더라도 장차 인체유래물이 재산적, 상업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경우 제공자에게 아무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온당한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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