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정책협동과정 석사
김 남 희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진료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번 상상해봅시다. 요즘 휴일에도 일을 했더니 머리에 열이 납니다. 잦은 황사와 미세먼지에 기침도 멈추질 않네요. 병원에서 진료를 한 번 받아야겠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진료실을 향합니다. 대강당과 같은 진료실 문을 여니, 커다란 벽걸이형 모니터가 좌우로 두 개가 걸려 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분야의 의사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내과 전문의가 가장 먼저 입을 엽니다. ‘과로로 인한 단발성 미열로 보입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말을 더합니다. ‘일에 의한 스트레스도 원인입니다.’ 하지만 다른 전문의의 의견은 다릅니다. ‘단순 과로 때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증상을 보아하니, 요즘 심각한 미세먼지에 의한 질환으로 보여 집니다.’ 이제 나는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고 보니 일을 하느라 바깥 외출이 잦아 미세먼지 탓인 것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디네이터가 입을 엽니다. ‘그럼 인공지능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지요.’ 커다란 벽걸이형 모니터에 그 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진료기록과 의학지식 토대로 인공지능이 숫자와 코멘트를 띄웁니다. ‘미세먼지에 의해 시작된 열이며 과로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었다. 91%의 확률로 충분한 휴식과 약, 마스크 처방을 권장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인공지능의 제안을 받아들여 처방전을 받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마스크를 낀 채 병원을 나오며 생각합니다. ‘내 미세먼지 때문일 줄 알았어!’
사실 이는 상상 속이 아닌 현존하는 진료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현재 암환자를 대상으로 인공지능을 도입한 한 병원은 위와 유사한 과정을 걸쳐 처방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앞으로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의료 환경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인공지능(人工知能, 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무엇일까요. 인공지능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컴퓨터로 흉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로, 문 앞에 폭탄이 있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이를 위험한 상황으로 평가하고 들어가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짧은 시간 안에 관찰, 인식, 평가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그리고 기존에 있었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새로운 사실을 패턴화해서 기억합니다. 예컨대, 문 앞에 폭탄이 있던 것은 기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전혀 다른 패턴의 상황이며 이 새로운 상황에 대해 가설을 설정합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위험한 물질, 즉 폭탄 일 것이다.’ 그리고 기존에 TV에서 봐왔던 폭탄의 모양을 기억해 같은 패턴인지 추론해봅니다. 폭탄이 터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는 점을 떠올려 위험한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인지하게 되지요. 그리고 물체를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폭탄이 맞는지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도망가야 하는지, 신고를 먼저 해야 하는지 최적의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이해하고 평가하고 결정하는 생각의 기술을 컴퓨터로 구현한 것이 바로 인지 컴퓨팅의 원리입니다. 여기에 의료 환경은 딥 러닝(Deep Learning)을 더합니다. 인간이 사물을 구분하듯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분류를 통해 예측하는 기술이지요. 병원은 딥 러닝을 통해 이미지뿐만 아니라 환자의 정보, 그리고 의료에 관한 기술적인 자료를 조합해서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고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인공지능은 의료 환경을 어떻게 바꿔나갈까요.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현재 의사가 하고 있는 많은 역할이 대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인공지능: 미래의사의 역할을 대체할 것인가(최윤섭, 2016)’에 의하면 인공지능의 의료 분야 활용을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ⅰ. 전자의무기록, 유전정보, 건강정보 등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분석하여 치료권고안이나 건강조언을 주는 역할.
ⅱ. 방대한 학습량을 기반으로 특정 종류의 의료 데이터를 해석하고 판독하는 역할.
ⅲ. 심전도, 혈당, 혈압 등의 연속적인 생체 데이터를 분석하여 위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거나 예측하는 역할.
그렇다면 ‘의사보다 뛰어난 의사’인 인공지능은 완전히 의사를 대체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많은 일을 대체하더라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인간의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결정’과 ‘책임’입니다. 현재 인공지능에 기초한 의사결정 과정은 이렇습니다. 여기 유방암 환자 A씨가 있습니다. 이 환자는 유방암 전체는 잘라내야 하는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수술 후에 재발 방치 치료법을 논의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의료진에게 찾아갔습니다. 의료진은 전반적인 재발을 줄이는 항암제를, 인공지능은 겨드랑이 림프절을 포함한 방사선 치료를 권장하였습니다. 환자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양쪽 얘기를 듣고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처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제시된 치료법을 선택하는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결정에 따라 치료를 책임지는 주체는 결국 인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2017년 1월 6일부터 8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아실로마에서 인공지능 원칙 23가지가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스티븐 호킹, 일론 머스크, 데미스 허사비스 등 저명한 인물 2천여 명이 서명하였지요. 이 23가지 원칙에서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윤리와 가치(Ethics and Value)에 해당하는 원칙이 13개항이라는 점입니다. 연구이슈(Research Issue)와 장기적 이슈(Long-term Issue)는 각각 5개항이지요. 장기적 이슈에도 상당 부분 윤리적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가에 초점을 맞춘 원칙인 셈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기에 앞서 옳고 그름의 이정표인 윤리는 가장 먼저 확립해야할 우선순위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실질적 적용이 이루어지는 의료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 번의 오류가 치명적으로 한 인간의 생명, 존엄함, 권리와 자유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인공지능은 의료 환경에서 단순히 기술발전뿐만이 아닌 법학·의학·생명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 다학제적인 생명윤리연구를 통해 발전해야할 것입니다. 흐름에 발맞추어 이에 대한 깊은 논의와 토론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참고문헌>
– 김대호,『4차 산업혁명』,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이강윤 · 김준혁, 인공지능 왓슨 기술과 보건의료의 적용, Korean Medical Education Review 2016; 18(2): 51-57.
– 최윤섭, 인공지능: 미래의사의 역할을 대체할 것인가, Korean Medical Education Review 2016; 18(2): 47-50.
– 가천대길병원 인공지능암센터 홈페이지 http://www.gilhospital.com/wo/index.html
– Future of Life Institute Homepage https://futureoflife.org/ai-principles/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료인이 주장할 수 있는 비교우위가 “결정” 과 “책임”인 시대가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입니다.
알파고끼리 둔 바둑 대국에서 보았듯이, 인공지능은 인간이 정해준 법칙을 벗어나더라도 얼마든지 인간보다 우수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잇습니다. 그렇다면 “결정”에 있어서도 인간보다 우수함을 입증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나름대로 “비교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은 교감이라든가 감성 같은 부분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즉, “두뇌”로 대결하는 영역은 결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으니, 그 이외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분야도 마치 사람처럼 교감하고, 마치 사람처럼 상대방의 정서에 반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그 분야마저 인간이 비교우위를 주장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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