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연구와 연구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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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지킬 박사 같은 일명 미치광이 과학자가 소설 속의 이야기에 그쳤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가상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초판이 발행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빅터와 지킬을 뛰어넘으려는 경쟁이라도 붙었는지 매스컴에서는 각종 실험과 그 성과들이 보도되고 있지요. 두 작품은 비윤리적인 실험을 강행한 19세기 소설이라는 점 외에도 뮤지컬로 만들어져 흥행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명곡으로 유명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흥행을 거뒀고, <프랑켄슈타인> 역시 2014년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합니다. 컬트영화의 대명사인 <록키 호러 픽쳐 쇼>역시 프랭크 박사가 만든 인조인간 록키 호러의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록키 호러 쇼>가 원작이죠. 뮤지컬이 노래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의 인물의 심경을 묘사하는 만큼, 상식을 넘어선 과학자의 실험과 그로 인해 생긴 피조물의 이야기가 드물지 않게 차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서 보면 여전히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 신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발표된 인공 자궁마저도 어미 몸에서 조산된 새끼 양을 품어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었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을 발명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있는 질병을 없애려는 노력은 충분히 이뤄졌고 이 부분에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 같습니다. 지구촌이 일일생활권이 된 시점에서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신종 플루(H1N1)나 메르스(MERS) 같은 질병을 겪고도 건재한 인류를 보면 말입니다. 이 배경에는 신약 개발을 위해 이뤄진 셀 수 없는 실험이 있습니다. 이 실험들이 모두 적법한 절차에 맞춰 안전하고 공정하게 진행됐으면 좋았겠지만 익히 알려진 사례들만 생각하더라도 실험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부 투명하게 벌어지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생체 실험에 관해서도 논의 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오늘 다뤄볼 이야기는 약물이 아닌 생각을 주입하는 심리 실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심리 실험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71년에 스탠퍼드 교수 필립 짐바드로(Philip Zimbardo) 교수가 진행한 교도소 실험일 것입니다. 이는 환경 조작에 따른 심리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일당을 주고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을 맡긴 실험입니다. 실험 대상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과도하게 동화되는 바람에 계획했던 2주를 채 반도 채우지 못하고 5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에 이보다 훨씬 더 오래, 5개월 동안, 그것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이 있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일명 ‘the Monster Study’라고 불리는 실험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39년 미국의 아이오와 대학의 웬델 존슨(Wendell Johnson) 박사는 말을 더듬는 것을 학습된 것으로 생각해 정상 아동이 말을 더듬게 유도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고아원 어린이 22명을 대상으로 말더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22명의 어린이 중 10명은 원래 말을 더듬었고, 12명은 말을 더듬지 않는 아동이었습니다. 박사는 말 더듬는 어린이 5명과 그렇지 않은 어린이 6명에게 언어 장애가 있다고 알려주었고,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실험을 진행한 석사 과정생 메리 튜더(Mary Tudor)는 6명의 정상 아동에게 이러한 말을 들려줍니다. “너는 말을 더듬는 문제를 가지게 될 거야. 너는 말을 더듬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증상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그걸 즉시 멈추려고 노력해야 한단다. 너의 의지력을 이용해서 무슨 수를 써서든 말을 더듬지 말아야 해. 제대로 못 하겠으면 아예 말도 하지 말거라.” 반면 말을 더듬는 5명의 아이에게는 “너는 말 더듬을 벗어날 거란다. 지금보다 말을 더 잘하게 될 거야. 지금은 잠깐 지나가는 시기니까 다른 사람 말에 신경 쓰지 말도록 해.”라고 말하며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이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이전까지 말을 더듬지 않았던 6명의 아이들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도 두려워했고, 학업에도 어려움을 겪었으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틱 장애와 말더듬이의 특징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연구의 진짜 목적을 알지 못했고, 일부는 평생 언어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존슨 박사는 나치가 행한 생체 실험과 자신의 연구가 결부되어 자신의 명성에 누가 될 것을 우려해 연구 결과를 비밀에 부쳤고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결국, 60년이 훌쩍 지난 2001년에서야 한 기자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 도서관에서 논문을 본 아이오와 대학의 언어 병리학과 학생들은 암암리에 ‘괴물 연구(Monster Study)’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생존해 있던 3명의 실험 대상자는 소송을 제기해 97만 5천 달러의 배상금을 받았다고 하네요.

 

어린아이, 그것도 보호자가 없는 고아를 상대로 비윤리적인 실험을 강행한 존슨 박사는 그 자신이 말을 더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강행한 것입니다. 실제로 실험 세션을 진행한 튜더는 실험이 밝혀지자, 당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끔찍했지만 존슨 박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은 공개 사과를 하면서 당시에는 이런 실험을 막을만한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으며, 현재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하는 엄격한 정책과 절차를 갖추었으니 다시는 이런 실험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윤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이나 가습기 살균제 연구 용역 부정행위를 비롯해 학계에 비윤리적인 행위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교에서도 제2의 웬델 존슨, 괴물 연구를 하는 연구 괴물의 출몰을 방지하기 위해 2014년 이후 대학원생들에게 연구윤리 교과목을 필수로 수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연구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인간 대상의 연구와 동물 실험까지 연구를 하면서 고려해야 할 ‘연구 윤리’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특히 심리 실험의 경우 신체에 물리적인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숨기거나 왜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학문의 이름으로 인류의 도약을 바라기 전에 학자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특히 심리 실험의 경우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트라우마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2의 연구 괴물뿐만 아니라 프랑켄슈타인, 하이드 씨, 록키 호러, 그리고 존슨 박사의 실험 생존자 (2001년 기준) Norma Jean Pugh, Mary Korlaske, Hazel Potter 같은 괴물 연구의 희생양을 방지하기 위해서 연구 윤리에 대한 생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참고문헌>

  • “The Stuttering Doctor’s ‘Monster Study’”. The New York Times Magazine, 2003.
  • 에드윈 바티스텔라. 『설득의 기술』, 김상현 역, 문예출판사(2016).

괴물 연구와 연구 괴물”에 대한 1개의 생각

  1. 존슨 교수의 연구는 어두웠던 연구윤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건이군요. 피험자들이 고아가 아닌 어린이들이었더라면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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