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려 노력하지 마세요

Old Woman, Desert, Old Age, Bedouin, Dry, Old, People

 

“나를 살리지 마시오.” 이 말이 생명의 존엄을 무시하는 무지한 발언으로 생각되시나요? 그럼 뒤에 한 문장을 덧붙여보겠습니다. “아흔한 살은 더 먹었다네.” 어떠신가요? 첫 문장을 마냥 무지한 발언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 문구(Niet Reanimeren!!! IK BEN 91+)는 실제로 네덜란드의 Nel Bolten 할머니가 만 아흔한 살에 15cm 크기로 가슴에 새긴 문신입니다.

 

심폐소생은 심장의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멎었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의 한 방법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뇌세포가 손상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시행하게 됩니다. 제때 적합한 방법으로 실시하면 심장마비 환자의 생존율은 3배 이상 높아집니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손으로 생명을 구하는 기적 같은 일이지요. 그런데 Nel Bolten 할머니 외에도 많은 사람이 삶의 연장을 포기하고 심폐소생술을 거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no CPR’을 새긴 문신을 새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종 소생술이나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意思)를 ‘DNR(Do not resuscitate)’이라고 부르는데요, 왜 많은 사람이 자신을 살리려는 손길을 거부하는 것일까요.

 

그 이면에는 ‘죽음에 대한 권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존엄사(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2016년 2월, 일명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2018년에는 존엄사가 허용될 예정입니다. 이 법에 관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웰다잉법)” 입법에 관하여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존엄사가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없는 말기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지하는 적극적 안락사에 가까웠다면, DNR은 보다 넓은 대상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말기 환자 외에도 Nel 할머니처럼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하는 사람 누구든 DNR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소생술이 적절히 시행된다면 좋은 예후를 불러오지만, 소생술이 모든 심정지 환자에게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원인과 상황에 따라 소생술 이후에도 장애, 의존적 생활 형태 등의 후유증이 남거나, 사망에 이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 때문에 DNR을 선언한 이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식물인간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는 것이죠.

 

DNR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이 권리를 인정하면 자살을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기도 합니다. 혹은 판례에 근거해 의료인의 살인 방조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도래한 고령화 시대를 고려해보면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연장할 수 있는 희망이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의 연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질병관리본부의 심정지 조사에 따르면 20,091건의 심정지 환자 중 50% 이상이 65세 이상 성인이었습니다. 의료제공자는 환자를 소생시키지 않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소생술을 시도하기에 이 중 15,298건(76.1%)의 심폐소생술이 시행됐습니다, 최종적으로 생존 퇴원율은 3%(511명)이었으며 이 중 양호한 신경학적 결과를 보이며 퇴원한 경우는 전체의 154명(0.8%)뿐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1%도 안 되는 이 확률을 바라며 삶에 욕심을 내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적은 확률을 아는 의료진들도 소생술 후에 회복이 실패하면 자책하거나 환자의 죽음에 거부감을 가지고 인정하지 않기도 한답니다. 말기 환자의 심경에 대한 글은 죽음을 앞둔 환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 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확률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의 결정입니다.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환자의 연명 치료에 대한 결정은 의식 불명의 환자 당사자가 아니라 보호자와 의사에 의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DNR은 이런 상황에서 생의 끝자락에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상황 전에 미리 작성해 놓는 일종의 유언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를 living will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말기 환자들에게만 DNR 동의서를 받았지만, 웰다잉 법의 시행 이후에는 국내 지역보건의료기관, 의료기관, 관련 비영리기관 및 단체, 지정된 공공기관이나 한국사전의향서보관은행(https://livingwillbank.com)에서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사전에 작성한 동의서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생전에 충분히 고심한 환자의 의사를 알려 보호자의 결정을 돕는 데는 중요한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적은 일어납니다. 지난 6월에는 77분 동안 쉬지 않고 8,000회의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며 전기 충격 9회를 실시해 30대의 심근경색 환자 임 모 씨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갈비뼈 6~7개가 부러지고 전기 충격의 여파로 1~2도의 화상을 입기는 했지만, 젊은 나이에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의료진의 막대한 노력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개인의 결정이 전적으로 옳거나 최선이지 않을 수도 있고, 단 1% 가능성이라도 생명의 존엄함을 생각한다면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이들처럼 최선을 다해 생명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렇지만 삶의 마지막을 뜻대로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 역시 윤리적으로 존중해줘야 하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고>

김아진(2014), 「응급의료에서 심폐소생술에 관한 결정」,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이재경(2008), 「생명윤리와 사전의료지시서」,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53집 제3권.

대한심폐소생협회 http://www.kacpr.org/cpr/index.html?cat=1

Gemma Mullin, ‘Dutch pensioner, 91, gets ‘do not resuscitate’ tattooed on her chest in right-to-die protest’, 2014-11-15 19:28, Mail Online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836057/Dutch-pensioner-91-gets-not-resuscitate-tattooed-chest-right-die-protest.html

최원우 기자, ‘30분 지나면 포기하는데… 77분 집념, 멈춘 심장 깨우다’, 2017-06-09 03:03,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9/2017060900118.html

나를 살리려 노력하지 마세요”에 대한 1개의 생각

  1. 외국에서는 DNR을 운전면허증에 표시한다는 것을 들었는데, 가슴에 문신으로 새기는 것은 과격한 듯 하면서도 의료진이 도저히 놓칠 수 없도록 만전을 기하는 의미도 있겠네요.

    그런데 65세 이상의 심정지 환자 가운데 CPR로 소생하여 신경학적 장애 없이 무사히 퇴원한 환자들은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자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오고가는 일이라면 0.3%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겠으나, 그 0.3% 범주의 환자들에 대하여 현대의학은 소생의 가능성을 보다 높게 예상할 수 있었다면 희망이 있는 소생술과 희망이 없는 소생술을 의료진이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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