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왜 배달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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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한 주가 끝나고 새로운 주를 준비하는 일요일 저녁, 갑자기 복통이 시작되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눈앞은 하얘지는데 구급 상자에는 감기약 하나 없다. 도저히 밖에는 나갈 엄두는 안 나고 가족들은 친척 결혼식에 가서 내일까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급차를 부르기에는 단순한 소화불량 정도라서 응급실에 가봤자 정말 위중한 환자에게 피해만 갈 것 같다. 약 한 알만 먹으면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근처 편의점에 갈 힘도 남아 있지 않다. A 씨는 고민 끝에 배달 음식을 시키면서 근처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같이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배달원이 사 온 약을 먹고 겨우 다음날 건강을 회복해 출근했지만 먹지도 못할 음식을 시키고, 배달원에게도 본업이 아닌 일을 추가로 부탁해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럴 때 배달 음식처럼 전화 한 번에 약을 배달시킬 수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B 씨는 안구건조증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사용하던 인공누액을 처방받으러 안과에 갔다가 급한 전화를 받고 지방에 내려가느라 정작 약품은 구매하지 못했다. 쉴 틈 없이 바쁜 데다가 낯선 동네에서 약국을 찾기도 쉽지 않아 결국 종일 업무를 보다가 서울에 돌아왔더니 동네 약국들은 이미 전부 문을 닫았다. 내일이라도 약을 먹어야 할 텐데 출근 전 이른 아침에 약국이 열 리 없다. 그러다가 B씨는 약을 주문해서 받을 수 있으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면 낯선 지역에 가서도 헤매지 않을 수 있고, 업무시간과 겹쳐 약국을 방문하지 못할 일도 없을 테고, 인공누액 같은 정기적으로 필요한 의약품은 떨어질 때가 되면 알아서 집 앞까지 가져다줄 텐데 말이다. 24시간도 부족한 B씨가 약국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왜 우리는 각종 물품을 단 몇 시간 만에도 받아보고, 못 시켜먹는 음식이 없는 배달의 민족이면서 정작 건강을 위한 약은 배달받아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바로 약사법 제50조 1항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약사법 제24조 제4항 역시 “약사는 의약품을 조제하면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에게 필요한 복약지도를 구두 또는 복약 지도서(복약지도에 관한 내용을 환자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설명한 서명 또는 전자 문서를 말한다)로 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통해 약사와 환자의 대면적인 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위 항을 근거로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을 위해 의약품의 관리와 책임소재의 명확화, 충실한 복약지도를 위해 의약품의 온라인 판매는 약사법 위반사항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면, 미국과 캐나다는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도 온라인으로 판매해왔으며, 가까운 중국과 일본도 최근에 의약품의 온라인 규제를 허용했습니다. 유럽은 국가별로 다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규제를 허용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의약품을 어떤 나라는 온라인에서 팔 수 있게 하고 어떤 나라는 금지하는 걸까요. 우선 온라인 판매의 장점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문할 수 있고, 약국이 가까이 있지 않아도 편하게 집에서 주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손쉽게 가격 비교도 가능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 일입니다. 그리고 직접 약국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몸이 불편하거나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반면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는 이유는 온라인을 통해서는 보건복지부에서 말했듯이 의약품의 관리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어렵고, 직접적인 복약지도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법거래와 오남용의 우려 때문이겠죠.

사실 온라인 의약품 거래가 불법인 지금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향정신성의약품과 발기부전치료제 등의 불법 판매 광고를 매우 자주 접하게 됩니다. 온라인 의약품 판매 역시 실제로 약사를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사의 자격을 증명할 수 없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눈앞에서 증명할 수 없는 약사가 과연 정품 의약품을 제공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고,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처방전이 위조되지는 않았는지 의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에 직결되는 물품이 면대면으로 판매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고려해봐야 할 사항입니다. 반대로 면대면으로 판매하더라도 일반의약품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오남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약품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는 온라인으로 주문이 가능한 콘택트렌즈나 삽입형 생리 용품인 생리컵 역시 국내에서는 온라인 구매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국내 가격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미국이나 홍콩 등의 해외 사이트를 통해 콘택트렌즈를 구매하고, 식약처에서 의약외품으로 구분해 사실상 국내 판매가 불가능 해왔던 생리컵 역시 해외 사이트를 통해 직접구매(직구)하고 있습니다. 이중 콘택트렌즈의 직구는 지난 2016년 5월 29일 개정된 법률에 따라 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를 통해 판매할 수 없게 되었고 해외 구매를 통한 대행 판매 역시 금지되었습니다. 생리컵은 민원을 통해 이번 안정성 검증 후 이르면 이번 여름부터 판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례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약 법이 대다수 국가들에 비해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모든 국가의 법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큰 부작용 없이 시행되고, 또 이 방법이 소비자들에게 부작용보다 큰 이로움을 가져다준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쯤 고려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콘택트렌즈나 생리컵 같은 의약외품 외에 전문의약품도 처방전을 제시하면 해외 구매를 할 수 있고, 실제로 영양제를 비롯해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다양한 약품들이 온라인을 통해 합법적으로 국내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온라인에서의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과연 국민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생각해봅니다.

 

 

 

 

<참고>

  • 이원복, 의약품 온라인 판매 규제의 새로운 접근, 생명윤리정책연구, 제 9권 제 2호, 2015.
  • 이종인·이승신, 의약품 거래규제에 관한 일고찰, 소비자문제연구, 제 41호, 2012.
  • 백경희, 의약품의 분류에 따른 약사의 주의의무와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OTC 판매)의 허용가능성, 법학연구, 제 14집 제2호, 2011.

 

약은 왜 배달이 안되나요?”에 대한 2개의 생각

  1. flavono31

    한번도 생각해보지못한 주제인데 ..굉장히 참신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배달되는 약이라니!
    어차피 불법 온라인 의약품판매가 이루어지고있는 현실이니 차라리 온라인의약품판매를 합법화해서 양지로 끌어낼것인지/오남용 등 부작용방지를 위해 현행대로 갈것인지..양쪽 다 일리가 있는 입장인 터라 어렵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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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권영수

    질문있습니다
    그러면 만일 옆집 할아버지가 인사돌을 사달라고 심부름을 시키시면
    이건 불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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