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뇌는 다시 현실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뇌라는 것은 역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몸속에서만 온전한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뇌 2, 열린책들
러시아 블라디미르에 살고 있는 컴퓨터 엔지니어 발레리 스피리도노프는 선천성 척수근육위축증(베르드니히-호프만)을 앓고 있습니다.
베르드니히-호프만 병(Werdnig-Hoffman disease) 또는 유아성 척수성 근육위축(SMA1)
· 이 질환의 신생아들은 6개월 이전에 심한 근육 허약을 나타내며, 독립적으로 앉을 수 없다다. 운동 발달 장애, 근육 긴장성 감소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 이 질환의 유아는 젖이나 우유를 빨거나 삼키는 능력에 이상이 생기며, 태어나서 첫 몇 달 동안 복식 호흡을 합니다. 근육이 약해지는 증상은 신체의 양쪽에서 함께 나타나며, 혀 근육의 근육부분수축(속상수축: Fasciculation)이 종종 일어나며 눈 근육은 영향을 받지 않고, 인지 능력도 정상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2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지만 호흡기의 기능 정도에 따라 생존기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척수성 근육위축 및 관련 증후군 [Spinal Muscular Atrophy and related syndromes] (희귀난치성질환 정보, 국립보건연구원 희귀난치성질환센터) |
위 설명과 같이 근육이 서서히 약화되어 몸을 쓸 수 없는 이 병으로 스피리도노프는 현재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 신경외과 의사와 함께 머리(頭部)이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카나베로 박사에 따르면 뇌와 연결시킬 몸은 뇌사에 빠진 환자로부터 기증받을 예정이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로 예정되어 있었고, 예상되는 수술비용은 한화 120억 원 가량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금조달 등의 문제로 무산된 상태라고 합니다. – 하단 참고문헌의 기사들 참조.)
두부(頭部)이식에 대한 의학적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고, 이 수술은 여러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먼저, 정체성 문제입니다. 머리와 몸이 완전히 연결되고 회복된 이후의 정체성은 당연히 문제가 되겠거니와, 회복 중 정체성 혼란 문제는 발생하게 됩니다. 스피리도노프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각기 다른 주체의 머리와 몸을 잇는 수술이 행해지고 완전히 회복되는 과정의 정체성이 두부(頭部)에서 비롯된다고 보아 이 사람을 스피리도노프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기증받은 신체에 중심을 두고 이 사람의 정체성을 파악해야 할지 명확하기 결론내기 매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수술 이후 완전히 회복되고 나서도 풀리지 않게 됩니다. 머리 이식 수술은 애초에 (머리와 신체를 분리하여 인식하는) 이원론적 관점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식 수술이 마쳐진 뒤에도 정체성 혼란은 계속될 확률이 높습니다. 비록 머리와 몸이 완전히 접합되어 회복되었다 하더라도 이원적인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 째, 두부(豆腐)이식 기술이 향후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입니다. 영화 ‘더 게임’ 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신하균은 나이 든 거부 변희봉과의 내기에서 패하게 되고, 그 댓가로 변희봉과 신체를 바꾸게 됩니다. 두부(豆腐)이식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고 보편화 된 먼 미래에는 사람의 신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끄러운 경사면이론(slippery slope)’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만 합니다.
<미끄러운 경사길 이론>
미끄러운 경사면에 공이 놓여있고, 공을 지지하기 위한 지지대가 놓여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지대를 제거하게 되면 공은 쉽게 경사면 맨 아래 바닥까지 굴러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어떤 사건에 대한 제어가 사라지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원인으로 또 다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결국 처음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희귀병을 극복을 위해 두부(豆腐)이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하더라도 먼 미래에는 본 이식 기술이 상업적으로 사용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
<미끄러운 경사길 이론>을 논리학적 오류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윤리분야의 특성상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간과할 수 없고, 최대한 보수적인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문제에 접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셋째, 스피리도노프는 뇌사자로부터 신체를 기증 받을 예정이었는데, 뇌사자를 사망자로 규정할 수 있느냐가 문제됩니다. 국내법적으로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통해 뇌사 판정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뇌사자로부터의 장기 적출을 합법화 할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4조 제5호
“‘살아있는 사람’이란 사람 중에서 뇌사자를 제외한 사람을 말하고, ‘뇌사자’란 이 법에 따른 뇌사판정기준 및 뇌사판정절차에 따라 뇌 전체의 기능이 되살아 날 수 없는 상태로 정지되었다고 판정된 사람을 말한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21조 “뇌사자가 이 법에 따른 장기 등의 적출로 사망한 경우에는 뇌사의 원인이 된 질병 또는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본다.” |
이렇듯 국내법은 ‘장기 기증 목적에 한하여’ (심장사가 아닌) 뇌사를 법적 사망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안에서 스피리도노프는 대한민국 사람도 아닐뿐더러 해당 수술이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이루어질 예정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법의 적용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 기술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두부(豆腐) 이식이 언젠가 문제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미래에 우리나라에서 두부(豆腐)이식이 문제가 된다면,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두부(豆腐) 이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장기 이식’에 ‘豆腐’이식이 포섭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해석할 수 없다면 어떠한 근거로 뇌사자로부터 신체를 분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합법화 할 수 있을지, 합법화 할 수 없다면 뇌사자로부터의 신체 절단 및 제3자로의 이식은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의 존립 기반인 신체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이 되어 형법상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각종 논란이 예상됩니다.
희귀병에 걸려 , 수술에 뒤따르는 엄청난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몸을 얻고자 하는 개인의 열망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두부(豆腐)이식 기술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측면을 지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상자를 열어도 괜찮을지, 어떻게 여는 것이 현명할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문헌]
김지혜. (2011). 인체조직 기증ㆍ이식에 관한 법제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생명윤리정책연구, 5(1), 97-116.
이종원. (2012). 뇌사와 장기이식의 윤리적 문제. 새한철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 75-89.
문상혁. (2015). 장기이식 환자의 동의권에 관한 연구. 생명윤리정책연구, 9(1), 1-32.
세계 최초 머리이식 수술 지원자 “후원 받지 못해 수술 불발” , 2017-06-27, 뉴시스 문예성 기자(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627_0000024024&cID=10111&pID=10100)
네이버 건강백과 희귀난치성질환 정보 ‘베르드니히 호프만’검색결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54103&cid=51362&categoryId=51362)
[머리 이식 수술] ‘머리’를 다른 사람 몸에 이식하는 남자와 국내 첫 인터뷰,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50211485911847
국가법령정보센터 (law.go.kr) –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두부 이식은 흥미로운 이슈를 야기하기는 하는데, 의학적으로 현실화되려면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좋아요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