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어머니께서 신부전증으로 투석중이신데요, 투석을 오래하면 오래 못산다고 하길래 신장이식 대기신청을 하고 온 가족이 적합성 검사를 받게 되었어요. 진짜 정말 설마 했는데, 제 혈액교차테스트 적합판정이 났어요. 신랑은 이런 상황이 너무 미안하다고 어머님도 너무 소중하고 나도 너무 소중해서 선택은 나보고 하라고 했어요. 이게 만약 우리 엄마와 사위의 일이었다면 난 어땠을까 생각 많이 해봤어요. 그래서 이식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드리겠다고 말하니 신랑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더군요. 근데 신장이식을 하면 임신 출산에 굉장히 위험하고 불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글을 봤어요. (중략) 애초에 적합성검사 할 때 2세 계획 중이라고 거부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텐데. 제가 진짜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상황을 어쩌면 좋을까요.”
이 이야기는 비단 인터넷 세상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침 드라마 각본에서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늘은 ‘생존자’ 장기이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장기이식이 아닌 ‘생존자’ 장기이식이라고 칭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해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 주관한 학회 「인권으로서의 생명윤리」에서 하대청 패널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서 장기를 떼어 환자에게 주는 것을 ‘생존 기증자 이식(Living Donor Transplant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생체이식’이라고 번역됐어요. 실제 삶을 꾸려가는, 살아있는 주체인 생존 기증자를 감춰버리는 결과를 낳았죠. 적어도 생명윤리에서는 생존 기증자의 존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자’ 장기이식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미디어에서 장기기증은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미담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에 ‘생존 기증자’의 고충은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지요. 여기서는 ‘생존 기증자’ 자체에,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한국에서 생존자 신장·간 이식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계신가요? 한국에서는 남은 가족이 뇌사를 잘 인정하지 않고, 사후 신체 훼손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주요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지요. 결과적으로 뇌사자 장기이식보다는 생존자 장기기증은 전체 중 96.3%가 8촌 이내 혈족에서 이루어졌습니다(2013년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제11조는 16세 미만이거나 의약품에 중독된 사람, 또는 정신질환자·지적장애인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동의능력이 있다고 검증된 사람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동의했다면 누구든 장기이식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유교적 풍토로 인해 가족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당연하고 정당하게 간주하는 상황에서 기증자가 완전히 자율적인 동의를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보고서 장기등기증자 차별·불이익 현황 및 개선방안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율성은 동의 능력을 충분히 갖춘 경우에 한하며, 제공된 정보가 충분하고, 그 결정 과정에 압력, 유인, 강요 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존 장기기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증을 원하는 사람이 동의 능력이 충분한 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제공된 정보가 충분한지, 기증 동의 과정에서 압력이나 강요 등은 없었는지에 대한 검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생존 기증자의 동의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정신적 평가 과정이 없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할 제도도 전무합니다. 무엇보다 설문조사 결과 9.4%가 장기기증 결정 과정에서 압력을 느낀 적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대청 패널은 가족 내 서열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 기증을 하게 된다는 문제에 주목합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미취업 여성이나 중년 여성이 자주 기증을 권유받는 것에 말입니다. 실제로 장기기증 결정 과정에서 압력을 느낀다고 대답한 전체 중 약 77%가 여성이었지요.
이처럼 생존자 장기기증은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옆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생존 장기기증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입니다.
<참고문헌>
– 시댁에서 제 신장을 원해요, 네이트판, http://pann.nate.com/talk/327882893
– 장기기중자의 눈물: 생존 장기기증자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print.php?idx=12743
– 인권으로서의 생명윤리(2017), 국내학회
– 장기등기증자 차별·불이익 현황 및 개선방안(2012), 질병관리본부
<이미지출처>
설문 조사 결과로만 보면 조금 슬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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