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태어난 아이,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

아빠와 아기

우리는 누구나 우연히 태어납니다. 저는 우연하게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니고 태어났지요. 아쉽게도 운동에 소질이 있진 않네요. 어린 시절엔 그다지 건강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태어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기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난 왜 살면서 달리기 1등도 못하게 태어난 거야?’하고 탓을 할 대상이 없는 것이죠. 이렇게 태어난 것도, 어쩌면 태어남 자체도, 우연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 조금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우연이 아닌 선택으로 태어납니다. 부모는 아이가 풍성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의사에게 말합니다. 누구에게든 사랑받을 수 있는 외모와 성품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아이에게 유전적으로 부여해달라고 말입니다.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는 뭐든지 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에게 투덜거립니다. ‘A는 눈동자가 아름다운 푸른색이야, 난 왜 검은 눈동자로 했어?’ 부모는 아이의 말에 책임을 느끼며 후회합니다. ‘그때 푸른 눈동자를 골랐어야 했는데!’

 

이 두 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마이클 샌댈이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주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샌댈은 선택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세계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우리가 세계를 어떤 자세로 바라보느냐’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거부할만 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럼 각각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갖고 있을까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아이가 우연히 태어나는 세계에 사는 우리는 삶을 주어진 선물로 받아들입니다(샌댈에 의하면). 우리가 삶을 주어진 선물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첫째, 우리의 재능이나 능력이 행위의 소산이 아니며 그래서 전적으로 우리의 소유가 아님을 둘째,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욕구나 처리 여하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아이를 선물로 여기는 것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피부색이 다르든 우리는 너는 왜 그렇게 태어났냐며 탓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태어난 이상 서로의 삶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틀을 조작하기

아이가 선택으로 태어나는 세계에서 우리는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삶은 우연히 주어진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바꾸고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위와 재능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원하는 대로 선택했다면 재능과 능력은 선물이 아닌 성취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서로의 삶이 우연이 아닌 선택이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묻게 됩니다. 너네 부모는 왜 노오력을 안해서 너는 그런 식으로 태어났냐고. 우리는 부모를 탓하게 되며 서로의 삶을 못마땅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샌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이 부모들에게 ‘확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열린 마음’을 촉구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열림은 가족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긍정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을 감수하고, 불협화음을 안고 살도록 하며, 통제하려는 충동을 자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극단적인 두 세계를 예로 들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복잡하게도 저 두 세계가 공존하는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완전히 우연히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샌댈이 이야기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본인의 재능이나 지위가 본인의 노력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 본인이 힘든 환경에 태어났더라도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말입니다.

 

<참고문헌>

우연성과 인권 https://brunch.co.kr/@greece7/5

  • 마이클 샌댈,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강명신 옮김, 도서출판 동녘, 2010.

 

<이미지출처>

https://pixabay.com/ko/%EC%82%AC%EB%9E%8C%EB%93%A4-%EC%95%84%EB%B2%84%EC%A7%80-%EC%96%B4%EB%A8%B8%EB%8B%88-%EB%B6%80%EB%AA%A8-%EC%95%84%EA%B8%B0-%EC%86%8C%ED%8C%8C-%EC%A0%88%EC%A0%84-%EB%AA%A8%EB%93%9C-%EC%BB%A4%ED%94%8C-2592302/

 

우연히 태어난 아이,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에 대한 1개의 생각

  1. “디자이너 아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대체로 윤리적인 이유에서인데, 샌댈 교수의 공리주의적인 근거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점이 새롭습니다. “자신의 후세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않아야 우리 사회가 예기치 않은 일을 감수하고, 불협화음을 안고 살도록 하며, 통제하려는 충동을 자제할 수 있게 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네요.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