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위해 배아를 생성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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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윤리적인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연구에 배아를 사용하여 유전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죠. 과학자는 연구용 배아를 얻기 위해 배아생성의료기관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아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첫 번째 배아는 임신을 목적으로 쓰다 남은 배아입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버려질 배아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 배아는 연구를 목적으로 기부한 정자와 난자를 가지고 만들어진 배아입니다. 여러분이 이 윤리적인 과학자라면 어떤 배아를 가지고 연구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연구를 위해 배아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한 한 의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생명윤리법 제2절제23조에 따라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상 위 경우에서 두 번째 배아는 생성될 수 없지요. 한국에서는 임신 목적으로만 배아를 생성할 수 있고 배아연구는 임신 목적으로 쓰다 남은 배아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법에서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점은 임신 목적으로 쓰다 남은 배아를 연구에 사용하는 경우와, 오로지 연구를 위해 배아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경우를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임신 목적으로 쓰다 남은 배아를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연구를 위해 배아를 생성하고 사용하는 일은 금지하고 있지요.

다시, 고민에 빠진 윤리적인 과학자로 돌아가 볼까요. 과학자의 고민과 생명윤리법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한 질문을 야기합니다. 「임신을 목적으로 쓰다 남은 배아를 사용하는 경우와 연구를 위해 배아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는 다른가? 다르다면 왜 다른가?」 두 경우를 도덕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배아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두는 난임 클리닉은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이고 어느 배아가 버려지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 배아를 만드는 것은 연구 자체가 배아를 파괴하는 일이며 배아가 반드시 버려지지 않는가.’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이유로 연구용 배아생성은 안되지만 어차피 버려질 배아를 연구에 사용하는 건 허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요.

하지만 이 이유는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첫 째로 연구를 위해 배아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쓰다 버릴 목적이 아닙니다. 연구를 위해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아를 파괴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배아가 파괴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배아가 버려지는 것’이 연구용 배아생성을 거부하는 이유라면 난임 클리닉에서 ‘배아가 버려지는 것’ 역시 거부했어야합니다. 임신을 목적으로 난임 클리닉에서는 수많은 배아를 만듭니다. 그리고 반드시 남아 버려질 운명에 처하죠. 이 상황은 이미 한국에서 만연합니다. ‘배아가 버려지는 것’ 때문에 연구용 배아생성을 거부한다면 그 이전에 이렇게 난임 클리닉에서 수많은 ‘배아가 버려지는 것’ 자체에도 먼저 반기를 들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난임 클리닉에서 배아가 버려지는 데에 거의 아무도 도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연구용 배아생성은 안되지만 어차피 클리닉에서 버려질 배아를 연구에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즉, ‘배아가 버려지는 것’을 이유로 한다면 연구용 배아를 생성하는 것과 버려질 배아를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둘 다 거부되거나 허용되어야 합니다. 사전에 클리닉에서 최대한 배아가 버려지지 않도록 정책을 만든다면, 연구용 배아생성 역시 최대한 배아가 버려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선에서 허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적인 과학자는 어떤 배아를 선택할지 도덕적 고민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생성된 배아든 유전병 치료를 목적으로 신중하게 최대한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까요(그는 ‘윤리적인’ 과학자니까!). 문제는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 연구용 배아생성만을 막고 있는 과거의 망령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연구용 배아생성만을 금지하게 됨으로써, 임신 목적으로 쓰다 남은 배아를 연구에 사용하는 경우와 오로지 연구를 위해 배아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다르다’는 함의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두 경우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이제는 과거의 망령을 털어버리고 다시 연구용 배아생성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 마이클 샌댈,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옮긴이 강명신, 도서출판 동녘, 2010.

<이미지출처>

https://pixabay.com/ko/ivf-%EB%8B%A4%EC%82%B0-%EB%B6%88%EB%AA%A8-icsi-%EB%82%9C%EC%9E%90-%EC%94%A8-%EB%82%A8%EC%84%B1-%EB%B6%88%EC%9E%84-151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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