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의 비범죄화, 그 이상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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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1953년에 도입된 낙태죄 규정이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에 내려졌습니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개정 이전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한 태아의 발달단계 혹은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만큼, 이제 중요한 것은 입법의 방향과 현실에의 적용입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 이내’인 임신부가 ‘본인 및 배우자가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질환 혹은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 및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중 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는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서도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 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함께 개정되어 낙태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기간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기간이 구분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낙태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기간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기간은 어떻게 정해져야 할까요? 국회입법조사처가 2018년 5월에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낙태 허용 방식에 대한 입법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임신 후 일정 기간 내에서는 임부의 의사에 따른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기한방식입니다. 두 번째는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일정한 적응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는 적응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식은 이러한 기한방식과 적응방식을 결합한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낙태에 대한 입법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프랑스의 경우 ‘임신 12주의 기간 내에서는 곤궁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임부는 의사에게 낙태를 요청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임신 12주 내의 기간을 낙태 허용 기간으로 두는 기한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형법 제218조에서 낙태 처벌규정을 두고, 218조 a에서 불가벌 사유를 규정하여, 매우 완화된 요건을 요구하는 적응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임신 24주 이내에서 임부나 임부의 자녀 또는 임부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훼손 위험이 낙태하는 때보다 임신을 지속하는 때에 더 큰 경우, 임부의 건강에 대한 중대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낙태가 필요한 경우, 임부의 생명에 대한 위험이 낙태하는 때보다 임신을 지속하는 때에 더 큰 경우’ 등에 해당하면 의사에 의해 이루어진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살펴본 외국의 입법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에 낙태에 대한 예외적 허용 사유를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에 가까운 형태의 법률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산부인과 학계에 의하면 태아는 22주 내외부터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며 “착상 시부터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 행사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하며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일정한 적응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는 적응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헌법재판관은 “임신 14주(마지막 생리일 기준)까진 ‘조건 없는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프랑스가 현행법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다수 국가들이 ‘조건없는 낙태 허용 기간’의 기준으로 규정한 ‘착상기준 임신 12주’와 시기상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무엇에 의해 정해진 것일까요? 이는 바로 ‘태아의 생존 능력시기’ 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생존 능력(viability)이란 태아가 태어나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출생 후 자발적으로 혹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호흡이 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임신연령 18주의 태아도 맥박이 있고, 힘든 호흡이 가능하나 인체의 전 기관, 특히 폐가 미숙하여 산소를 주어도 폐포에서 가스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생존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한편 출생 당시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자궁 밖의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성장과 발달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태아의 생존능력은 생명의 징후인 심박동, 자발적 근육 움직임이 가능한 임신 22주 이상이거나 체중 500g 이상일 때입니다. 한편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이 제시한 ‘임신 14주’는 태아가 독자적으로는 절대 생존할 수 없다고 미국과 유럽 등 다수의 국가가 인정한 기간입니다. 이처럼 의학적 관점에서 본 태아의 생존능력의 시점이 각국 입법례의 기준이 된 셈입니다.

이렇듯 일정한 기간과 요건을 두어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은 이미 낙태의 절차, 장소, 시술자 등에 관하여 자세한 규정을 두어 안전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여성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임부로부터 낙태 요청을 받은 의사에게 낙태의 방법, 위험성, 후유증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 줄 의무가 있고, 임부에게는 낙태를 행하기 전에 1주일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집니다. 독일 역시 낙태 전 의사와의 상담을 의무화하여 낙태와 관련한 충분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는 낙태를 범죄화함으로써 안전한 진료환경이나 충분한 상담시스템, 제도화된 보호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못하여 여성의 신체와 정신적 건강을 보호하고 있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대비됩니다. 이제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의 비범죄화를 선언한 만큼, 2020년 12월 31일 제정될 법률안은 여성들이 마주한 ‘진짜’ 현실을 고려하여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인 그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태아 영아의 생존 한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김창렬, 2003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 이슈와 논점, <국회입법조사처>, 2018.5.1.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모자보건법 개정도 불가피’, news1, 2019.4.11.

‘낙태죄 ‘헌법불합치’…의료계, 후폭풍에 대응 태세’, 메디파나뉴스, 2019.4.12

낙태의 비범죄화, 그 이상을 넘어서”에 대한 1개의 생각

  1. 우리나라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것과는 역으로 미국의 몇 개 주에서는 소위 “Heartbeat Law”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태아 심박이 측정된 이후에는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고, 위헌 논란이 크므로 결국 연방대법원의 심사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Roe v. Wade 결정이 나온지 40년이 넘었지만 낙태를 둘러싼 논란이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렵고 많은 사람들의 “신념”을 가격하는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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