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질병이 될 수 있을까요?

gaming disorde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임중독’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마약, 도박 중독만큼 익숙한 개념입니다. 게임산업이 발달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게임이 등장하면서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담론이 형성되었고. 이제는 게임중독 역시 치료와 관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WHO는 정신적, 행동적, 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에 ‘게임이용 장애’를 규정하고, 이에 ‘6C51’이라는 질병 코드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WHO의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이 가지는 의미, WHO의 결정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번 결정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은 ‘사람의 질병 및 사망 원인에 관한 표준 분류 규정(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으로서 WHO가 규정하여 국제질병분류. 질병통계에 이용되고 있는 통계입니다. 지금껏 세계에서는 1990년 이후로 10차 개정판인 ICD10이 활용되어왔으나, 지난 5월 30일, 30년 만에 ICD10이 개정되어 앞으로는 11차 개정판인 ICD11이 활용되게 됩니다. ICD는 의학기술의 진보와 발전, 과학에 대한 이해 등 다양한 지식과 관점 변화를 고려하여 분류체계의 추가 및 재구성을 거쳐 개정되는데, 이번 개정안에서의 주요 변경 사항은 역시 ‘게임장애’ 코드가 새롭게 삽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HO는 역학연구, 뇌 영상연구, 코호트 종단추적연구 등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게임을 장기적으로 과도하게 하면 뇌의 도파민 회로와 전전두엽의 이상 소견 등 뇌 기능 손상이 관찰되고, 이는 다른 중독질환과 공통되는 점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과도한 게임 사용으로 충동·감정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다양한 신체 증상과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WHO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게임중독이 질병 개념 형성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인 ‘질병의 뇌과학적 기전, 질병 고유의 자연사적 경로, 그러한 정신·행동 문제로 인한 공중보건학적 폐해’를 충족한다고 판단하여 이를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규정하였습니다.

WHO가 제시하는 ‘게임이용 장애’ 진단의 기준은, ①게임에 대한 통제 불능(빈도·강도·기간 등) ②삶의 다른 관심사나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는 일 증가 ③부정적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지속 또는 확대가 나타나는,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온라인·오프라인 게임 행동 패턴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개인·가족·사회·직업 등에 큰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며, 최소 12개월간 증상이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ICD의 이번 결정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ICD는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ICD가 질환명 및 진료기록, 보험금 청구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국제, 국내의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ICD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 수정하여 자국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기존에 사용하던 ICD-10등의 국제코드를 한국 진료 상황에 맞춰 변형시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5년마다 개정되는 것으로서, 진료기록 관리, 사망원인통계조사, 보험금 청구 등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금 청구, 보험사의 질환 코드 관리, 사망통계 작성 등의 기준이 됩니다.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건강보험 적용 여부’입니다. 현재 게임 장애는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아 입원이 필요한 상황에도 그 비용을 환자가 부담합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 체계를 우회하기 위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 다른 질환으로 진단하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험 적용이 되면 의사들이 ‘게임 장애 질병코드’로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고, 정확한 게임 장애 통계가 잡힐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보건 전문가들이 제정하는 ICD와 달리,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은 보건복지부가 아닌 통계청이 작성합니다. 그리고 통계청은 오는 2020년에 예정된 한국질병분류코드(KCD) 개정에 ICD-11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적어도 그다음 개정 예정연도인 2025년까지는 국내에서는 게임 이용 장애를 정신장애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통계청의 결정은, ‘게임이용 장애’에 대한 게임산업 업계를 비롯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국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로 이뤄진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은 게임산업의 후퇴와 더불어 게임 이용자에 대한 중독자 낙인 찍기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게임 장애’가 ‘보건의 영역’이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중독포럼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의 이해국 교수는 게임 장애라는 용어는 게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수면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수면, 알코올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게임 장애 역시 게임이용의 패턴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어 정신적 기능에 이상이 생길 때 쓰는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출시되는 게임이 과거의 게임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한국에서 처음 나온 부분 유료화(Free-to-Play) 게임이 대표적 예입니다. 한번 CD를 팔면 사용자가 게임을 이용하는 시간이 수익과 무관하던 과거의 게임과 달리, 부분 유료화 게임은 사람들이 오래 플레이하고, 아이템을 많이 구매하는 만큼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게임 제작자들은 더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거기에 더불어 사행성 요소까지 게임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게임중독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가정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입니다. 게임 산업업체는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은 게임 자체보다는 가정환경,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유발된다면서 게임은 ‘미디어’일 뿐 그 자체가 중독의 요인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중독은 필연적으로 이용자의 성향, 특성, 사회문화적 영향 등과 결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중독 대상의 다수가 청소년이고, 중독을 유발하는 것이 가정환경,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이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더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들이 게임에 중독되도록 유도하는 게임회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중독의 질병화가 게임 이용자들을 ‘중독자’라 낙인 찍는 것이라며 그들을 치료와 관리의 대상에서 배제하려는 게임산업 관계자들의 말이 어쩐지 더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게임’이라는 미디어는 더 이상 경제, 문화적 영역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책임의 크기 또한 커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게임 역시 보건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하며, 게임 업체를 비롯한 문화, 보건, 사회의 여러 단체들이 게임중독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그 책임을 나눠야 합니다.

<참고문헌>

“WHO, 게임장애 등이 포함된 새로운 국제질병사인분류(ICD-11) 발표”, 정영훈,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정책개발팀, 2018

“게임장애가 ‘질병’이 된다면?”, 시사IN, 2018.04.05

“게임장애는 보건의 영역”, 시사IN, 2018.04.05.

“80년대초 첫 제기된 게임중독, 만장일치 질병 인정까지, 과학적 논쟁 아직 진행중”, 동아사이언스, 2019.05.26.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8959

“WHO, 게임 중독은 질병…국내 게임업계 규제 태풍 우려”, 한국경제, 2019.05.26.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19052653951

“이슈토론, 게임중독 질병 분류”, 매일경제, 2019.06.20.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6/437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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