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치료결정권

최근,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일명 ‘안아키’) 카페의 운영 한의사에게 대법원이 최종 유죄판결을 내리고, 징역이 확정되었습니다. 안아키 카페는 약 대신 숯가루나 소금물, 간장 등을 이용해 어린이의 질병을 치료하는 ‘자연치유 육아법’으로 지난 2017년 논란에 휩싸였던 카페입니다. ‘안아키’ 카페 논란은 의료방임과 아동학대의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안아키 카페의 치료법을 따르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부모를 의사가 아동학대로 신고하였으나, 무죄 판결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약을 안 쓰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부모의 권리는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허용될 수 있는 걸까요? 이러한 의료방임은 아동학대로 인정될 수 있는 걸까요?

이는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백신을 접종하면 아이의 건강이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가 늘었으며,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때아닌 홍역이 유행하여 아이들의 백신 접종율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백신 접종에 대하여 국가가 강제하게 된다면 이는 부모들의 친권 및 자유권을 침해하는 걸까요? 아동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부모의 치료결정권의 범위에 대하여 오늘은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유아를 포함한 아동의 건강권은 아동이 인간 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 중 하나입니다. 아동은 아직 미성년자이므로 아동의 보호자인 친권자가 아동 건강의 1차적 책임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친권자의 결정에 의해 아동의 건강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아동의 건강권과 관련된 친권의 한계 문제와 국가의 역할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의료 선택권이 굉장히 확대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어 있습니다. 다원주의의 확산으로 인하여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정보화 혁명에 따라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높아져 환자들이 쉽게 의료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부모(또는 친권자)들이 아이의 치료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안아키는 이러한 치료결정권 확대의 명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친권자가 아이의 치료결정권을 대리 행사하는 데 잘못하는 경우 국가가 직접 나서서 치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일본의 경우 친권자의 치료거부에 관하여 법정대리인이 동의권자인 경우, 본인의 의사가 명확한 때를 제외하고 법정대리인은 사회적으로 보아 적절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의료행위를 거절할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보다 아동을 위태롭게 하는 개별적인 상황에 대하여 법적으로 취해질 수 있는 구체적인 보호조치는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고, 법원은 친권의 전부 또는 일부의 상실을 명할 수 있으며, 적절한 후견인을 선임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경우 다른 후견인을 임명하고 강제로 수혈을 명하게 하는 등 치료를 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의 성공 가능성이 낮고 치료 방법이 고도로 침습적이어서 고통스럽고 일시적 또는 항구적인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에는 부모의 결정에 반하여 미성년자에게 치료를 강제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법원은 필요한 경우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동의 치료를 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녀의 생명 유지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필수 의료의 경우 친권자 등의 비합리적인 동의 거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데 학설은 일치하지만, 친권자의 치료결정권에 반대하여 국가가 치료를 직접 명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립합니다. 이러한 경우 친권자가 치료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방임하는 경우에 아동학대가 인정될 수 있을까요? 안아키 사건에서와같이 이러한 경우 친권자의 아동학대에 대한 고의가 어떠한 기준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가 문제됩니다. 

미성년자는 여러 측면에서 미성숙하더라도 ‘의료행위의 의미와 영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동의능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판단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경우에는 친권자의 결정에 따라 치료 유무가 달려 있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발생합니다. 친권자는 영유아와 같이 동의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의 경우에 미성년 환자를 대리하여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이때 그러한 의료결정은 아동의 건강에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권자는 도덕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동의에 대한 가정의 전제에 있어 1인칭 인격체의 관점을 포기하고, 그 대신 자녀와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우리-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부모의 권위에 의해 자녀의 자유를 제한하고 치료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간섭’에 해당하며, 이러한 결정에 따른 ‘의료방임’은 그 정도가 심하다면 정당성 및 아동학대의 미필적 고의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의료방임은 잘못된 의료지식의 공급에 그 원인이 있으며 친권자도 오히려 피해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병원의 부족으로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와 육아에 대한 관련 지식을 접할 수 있는 매체는 많아졌지만, 정보를 거를 수 있도록 부모가 가질 수 있는 교육의 기회는 많지 않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합니다. 의료방임으로 인하여 아동학대를 논의하기 이전에 의료방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의료방임에 아동학대의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지는 쉬운 문제가 아닐 겁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카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광고가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로서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나오게 하는 경우 그 결과를 부모의 온전한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현대 사회가 부모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도 분명히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방임의 문제를 쉬이 넘길 수 없는 것은, 아동이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아동의 건강권이 너무 쉽게 침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동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하여 자유가 조금은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개입할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가 지속적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참고 문헌>

김상찬. (2011). 의료에 있어서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 법학연구, 42, 69-89.

권미연. (2017). ‘안아키’ 논란에 대한 사회 윤리적 고찰. 도덕교육연구, 29(3), 229-250.

<이미지 출처>

pixabay.com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