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는 배아의 CCR5 유전자를 변형해도 될까?

CRISPR Cas9_NIH image gallery

다양한 언론에서 크리스퍼가 배아 단계에서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 보도한 바가 있습니다. 대중들은 혈우병이나 뒤센근이영양증과 같은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이런 연구도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감염인의 아이가 임신·출산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배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연구가 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태어날 아이가 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배아 단계에서 CCR5 유전자(CCR5 단백질이 없으면 HIV에 거의 감염되지 않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크리스퍼를 사용하는 연구를 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러시아 과학자와 처음으로 크리스퍼 아기를 탄생시킨 중국 과학자가 타겟으로 했던 유전자도 모두 CCR5 유전자였죠.

 

부모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배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유전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일과는 구분됩니다. 유전질환을 대물림할 가능성이 있는 부모가 질환이 있는 배아를 생성하였고 크리스퍼를 이용하여 그 배아의 질환유발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배아는 유전질환을 야기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정상적인 건강 상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러한 배아를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 질환유발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일 만한 행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부모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배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HIV 감염인인 부모는 대부분 정상적인 상태의 배아를 생성할 것입니다. 하지만 HIV 감염인이 임신·출산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HIV를 전염시킬 위험이 높습니다. 때문에 정상적인 배아의 CCR5 유전자를 변형하여 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정상적인 배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유전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상적인 배아의 CCR5 유전자를 변형하여 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유전적 증강(enhancement)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입니다.

혹자가 주장한대로 부모로부터 HI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배아의 CCR5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유전적 증강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서는 안 될까요? 증강이라는 용어의 경계는 흐릿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증강이라고 표현할 수도 또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모호한 증강의 정의(definition)를 규정하는 데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좀 더 구체적인 윤리원칙인 정의(justice)에 호소하고자 합니다.

노먼 대니얼스는 환자에게 ‘정상적인 범위의 기회’를 주기 위해 생물학적 수준에서 ‘종의 일반적인 기능’으로 되돌리는 것은 의무적인 형태의 케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HI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배아의 CCR5 유전자를 변형하는 이유는 태어날 아이를 ‘일반적인 건강 수준’으로 끌어올려 ‘정상적인 범위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사회에서 HIV에 전염된 아이는 다른 건강한 아이에 비하여 제한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에서 정상적인 범위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부모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배아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글은 윤리적 논의에 방점을 두고자 배아 유전자 교정 기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이 담보되었다고 가정하고 전개되었습니다-

 

<참고문헌>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gene.2017.00040/full

크리스퍼가 온다, 제니퍼 다우드나·새뮤얼 스턴버그, 김보은 옮김. 프시케의 숲. 2017.

우연에서 선택으로: 유전자 시대의 윤리학, 앨런 뷰캐넌·댄 브록·노먼 대니얼스·대니얼 위클러, 강명신·권복규·박소연·유소영·김지경 옮김. 로도스. 2017.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nihgov/41124064215, 비상업적 용도로 재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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