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실종사건과 항생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5기 이영신

 

어느 날 갑자기 꿀벌이 실종되는 ‘군집 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을 들어보셨나요?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된 ‘군집 붕괴현상’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일벌들이 이유 없이 사라져 벌통에 남아있던 여왕벌이나 애벌레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현상으로 그해 30%의 꿀벌이 사라졌고, 해마다 각국에서 다양하게 발생하여 여론의 주목을 받은 현상입니다.

꿀벌은 대단히 사회적이며 조직적인 곤충으로 꽃을 수정시켜서 인간의 식량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꿀벌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꽃 위에서 열심히 꿀을 나르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만 그러한 꿀벌의 노동으로 인간은 꿀만이 아니라 신선한 과일을 섭취할 수 있고, 꿀벌의 가루받이로 풀이 자라면 이 풀을 먹고 자란 소와 젖소 등 가축을 통해 고기와 우유를 얻습니다. 현재 지구상의 1/3가량의 식물이 꿀벌에 의해 수정이 된다고 하니 꿀벌은 정말 인류에, 자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벌꿀을 채집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 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벌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류의 식량 보급, 더 나아가 생존과 직결된 아주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군집붕괴현상으로 세계 각국의 꿀벌의 수는 삼분의 일 이상 줄었으며 그해 농산물 가격은 37%나 급등했다고 합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서는 화분매개를 담당하는 꿀벌의 감소로 생태계의 교란은 물론 식량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경고를 하였습니다.

과학자들과 양봉업자들은 군집붕괴현상이 발발한 이후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그 원인에 대해 전자파가 꿀벌의 진로를 방해한다는 주장, 태양의 흑점의 활동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 제초제, 살충제, 항생제 등에 의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린 꿀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들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주장 등 여러 주장들이 대두되었는데 최근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이유 중 관심 가질 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항생제로 인한 벌들의 장내세균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항생제(Antibiotics)’는 “미생물에 의하여 만들어진 물질로서, 다른 미생물의 성장이나 생명을 막는 물질”을 말합니다. 1928년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인류를 폐렴, 복막염, 파상풍 등에서 구원해준 ‘기적의 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질병도 항생제 처방에 의존하면서 세균 중 일부에서 유전자 변이가 발생했고 기존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변종 세균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의 등장한 것은 페니실린이 상용화된 1940년대라고 합니다. 내성균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더 강하고 넓은 범위에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 개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항생제 개발 속도가 내성균의 진화와 전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됐고, 전문가들은 이미 포스트 항생제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항생제가 어떻게 벌들에 투입이 된 걸까요? 양봉업자들은 벌들이 병들지 않도록 항생제를 설탕물에 섞어서 먹입니다. 하지만 설탕물에 들어간 항생제는 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장내 유익균을 감소시키고 유익균의 감소는 결국 벌들이 진드기나 바이러스성 질병에 취약해지게 해 벌들의 군집 붕괴현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꿀벌들이 항생제에 의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잃고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질병에 시달리고 결국 벌집을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 학자들은 벌꿀의 장내세균을 건강하게 바꿔주는 프로바이오틱스를 개발하고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s)와 같은 살충제에 강한 프로바이오틱스를 개발해 벌꿀의 모이에 섞어주는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항생제에 의해서만 군집 붕괴현상이 발생하였다기보다는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해당 현상이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꿀벌들의 항생제 남용 이야기는 곤충들만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2014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인구 1000명당 항생제를 매일 복용하는 사람의 수(DDD·Defined Daily Dose)는 20.2명이었는데 34개 회원국 중 이 수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으로 31.7을 기록했고, 특히 한국의 경우 통계가 집계된 2008년(26.9) 이래 2009년(26.9), 2010년(27.5), 2011년(29.1), 2012년(29.8), 2013년(30.1) 등 매년 증가 추세로 나타났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수치도 우리나라보다 낮을 뿐이지 오남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꿀벌만이 아니라 인류역시 항생제의 오남용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생제 남용과 오용의 문제는 곤충·인간·가축을 넘어 자연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국가간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항생제 내성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인간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인간과 동물·수산물로 연결된 생태계 경로를 거치며 항생제 내성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집붕괴현상 이후 자연적 방식으로 꿀벌을 키우며 사는 양봉가들이 키운 벌들은 다음 세대로 내려갈수록 면역력이 향상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든 꿀벌이든 약물 의존적인 자세로 항생제를 계속 투약하기 보다는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등 스스로의 면역력을 높이려는 노력과 동물들의 복지를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논문>

로완 제이콥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에코리브르, 2009

박용삼(2015), 그 많던 꿀벌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꿀벌에 치명적인 농약과 제초제… 꿀벌 사라지면 4년 내 인류 멸종,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문광주(2015), 꿀벌 의문의 죽음 왜? : 그 많던 꿀벌들, 어디로 갔을까, 환경미디어 통권318호 pp.50-54

윤상현(2016),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 국민영양 제39권 제3호 통권377호pp.26-28

클리닉저널(2015), 우리나라 유소아 급성중이염 항생제 처방률 84.19% : 2015 유소아 급성중이염 항생제 적정성 평가, Vol. 87 pp.23-25

 

꿀벌실종사건과 항생제”에 대한 1개의 생각

  1. 항생제의 남용은 항생제를 투여받은 개인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항생제 내성이 강한 균주의 발생을 유발하는 공중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규제가 정당화될 수 있는 이슈로 보입니다.

    어떤 방식의 규제가 가장 효율적일지는 물론 고민거리입니다. 몇년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표하고 있는 병의원의 항생제처방율 정보도 어느 정도 항생제의 과처방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으니 그것도 하나의 시작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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