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내 응급 환자 발생시의 문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기 김선미

가끔 비행기를 탈 때 응급환자가 발생해 승무원이 방송으로 의사나 간호사를 찾는 경우를 마주하게 됩니다. 저도 여행 중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의사들에게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은지, 선뜻 나서는 의사가 없어 여러 번 닥터콜 방송을 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기내에 의사가 없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체로 의사들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서서 진료했다가 혹시 환자가 잘못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질병으로 인한 응급상황이라면 더욱 부담감이 더 커지는 듯합니다. 미국 항공우주의학협회가 1998년 회원 2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비행기 내 응급 상황 유경험자인 응답자 850명 중에 533명(62%)만이 진료에 응했다고 합니다. 47명(5.5%)은 진료를 하지 않은 것인데, 진료를 하지 않은 이들은 환자가 자신의 전문 진료 분야가 아니거나, 의료 사고에 대한 부담감 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기내에서는 지상에 비해 낮은 기압과 습도나 시차 등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탑승한 의사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기내 응급 상황 발생시, 의사의 자발적인 도움은 환자를 위해서도, 또 항공기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미국에서는 기내 응급 응급환자 진료에 대한 의료진의 심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Aviation Medical Assistance Act’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응급환자의 진료 후 발생된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하여, 의료인의 고의가 없고 중대한 과실이 없을 때는 형사적 책임이 면제되는 법적 보호 장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응급의료법 제5조의2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하고 있습니다. 이 때 책임의 감면은 필요적 감면을 말하며, 형의 임의적 감면을 규정하는 응급의료법 제63조와 다릅니다. 경과실의 면책이 인정되는 범위는 그 손해가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것이어야 합니다. 법익침해가 응급의료나 응급처치를 조건으로 발생한 경우, 민법 제393조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손해에 대하여 경과실 면책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응급처치는 아니지만 응급의료의 내용인 상담·구조·이송 과정에서 발생한 법익침해 내지 손해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유의할 것은 재산상 손해와 사상은 응급의료 제공으로 인하여 야기된 새로운 법익침해여야 하며 기존 법익침해로 인한 사망 위험은 회피했지만 새로운 법익침해로 인한 손해가 배상의 대상이 되고 그 경우 무과실은 물론 경과실의 경우도 면책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에 따른 민사책임의 감경, 김천수, 의료법학 제15권 제2호, 2014년 12월)

응급의료법 제5조의2 규정은 일명 ‘착한 사마리안법’으로 불리지만 이 법에도 맹점이 있다고 지적됩니다. 경과실의 경우에 한하여만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고 사망에 따른 형사책임은 완전히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감면되는 것에 그친다고 규정하는바, ‘형사’책임만을 면책 혹은 감면한다는 점입니다. 민사책임은 별개의 문제로, 환자나 환자의 가족이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 의사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서는 선의로 응급처치를 한 것으로 말미암아 의료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선뜻 기내 닥터콜에 응할 수 없는 가장 심리적인 장애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사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으면 어떨까요?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의 ‘Doctor on board’ 프로그램(http://www.lufthansa.com/kr/ko/doctor-on-board)은 기내에서 의학적 지원이 필요할 경우 사전에 등록된 의료진이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지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등록 의료진들에게 소정의 마일리지 등의 프리미엄을 제공하고 항공 의학 독일 아카데미와 협력으로 진행되는 루프트한자 의료 운영 센터에서 진행되는 수업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내 응급환자 발생시, 승무원은 어떤 의사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에 더욱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혹시 기내 진료 후 문제가 생길 땐 어떻게 될까요? 기내 진료에 대한 책임 및 보험에 관하여는 기내에서 치료하는 의사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루프트한자가 가입한 책임보험의 효력 하에 의료진은 치료 받은 승객의 상환청구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됩니다. 즉, 승객이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게 될 경우 항공사가 가입한 책임 보험으로 의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때에도 고의적인 법익침해에 대한 보호는 제외됩니다. 루프트한자의 ‘Doctor on board’ 프로그램은 의사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동시에 항공사는 기내에서 이뤄진 의료 행위로 의사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한 부담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득이 되는 좋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의료진들에 대하여 수고와 희생에 대한 강요보다는 그들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의료진에게 그러한 인정과 존중을 보여준 적이 있었을까요? 항공기 이용률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Doctor on board’ 프로그램처럼 소소한 혜택이라도 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제공하고 응급 환자의 치료와 기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항공사와 의사, 탑승객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 같습니다. 응급 상황의 해결을 의사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에만 의존하기엔 의료진들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단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해 보이고,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항공기 내 응급 환자 발생시의 문제”에 대한 2개의 생각

  1.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재군요. 의사가 길 가다가 면식이 없는 사람을 도왔다가 나중에 되려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된다면 이는 상당부분 입증의 문제 — 즉, 의사가 개입하기 전에는 어떤 상황이었고, 의사가 어떤 처치를 했고 등등에 관한 의견 대립 및 그에 대한 입증 —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평소 했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처럼 갇힌 공간에서 좋으나 싫으나 현장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다수의 목격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의사의 진술을 보강해 줄 증인들이 많으니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의사선생님들은 비행기에서 중환자가 발생하면 누구나 기꺼이 나서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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