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상의 의약품 임상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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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Gillray, The Cow-Pock—or—the Wonderful Effects of the New Inoculation! (1802)

‘나도 당했다’고 고백하는 미투 운동의 열기가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토록 많았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뒤늦게나마 피해자가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사회가 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 순간이 여성 인권을 기록하는 역사의 한 챕터로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성 인권 향상의 정점에 다랐다면 좋겠지만, 아직 관심이 필요한 곳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의약품에서도 여성이 배제되어있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2016년 특정 성별영향분석평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식약처에서 허가된 국내 개발 신약의 초기 임상시험(1상) 여성 참여율이 630명 대상자 가운데 43명으로 6.82%에 그쳤다고 합니다. 문헌으로 계산하면 총 28건의 문헌 중 3건(10.71%)으로, 2014년 한해에만 25건의 신약 임상시험이 여성을 제외하고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성으로만 시행된 임상시험, 여성이 사용하는 데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알아보자면 초기 임상시험에 남성과 여성, 모두 참여하면 성별에 따른 약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후기 임상시험 설계에 사용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므로 성별과 관계없이 참여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특히 ‘중추신경계, 면역계, 심혈관계, 에너지 대사 등에 작용하는 의약품은 성별에 따른 약물동력학적 차이가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성별에 따라 이상반응의 중증도 및 발현율에 차이가 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식약처는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남녀 모두에게 사용하는 의약품은 성별에 따라 안전성과 유효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성별에 따른 약물반응의 잠재적 차이도 평가하는 것을 권장하며, 만약 차이가 발견된다면 약물정보에도 반영하라고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상시험에 여성이 항상 같이 참여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성별에 따른 약물의 반응 차이가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고, 의약품의 올바른 사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2014년의 조사와 같이 매우 저조합니다.

이 배경에는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가 제한될 수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제1상 임상시험 수행 시 주요 고려사항 (민원인 안내서)’ 가이드라인에 임상시험 대상자의 성별에 대한 제한은 기재되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약품 임상시험 시 성별 고려사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초기 임상시험에서 가임기 여성의 참여를 고려할 경우에는 건강한 여성 시험대상자에게 생식독성의 잠재력이 있는 약물 노출 시의 유익성 및 위험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태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임산부에게 임상시험을 실시할 때, 환자에게 태아독성에 관련된 위험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비임상시험에서 생식발생독성시험이 완료됐다면 그 결과도 시험대상자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자료가 없다면 태아에게 미치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명백히 언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가임여성은 피임법을 사용하지만, 의도치 않은 임신이 발생하는 경우 시험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산모와 태아를 잠재적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이지요. 이 때문에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시험자 입장에서는 중도 탈락해 최종 참여자 목록에서 제외될 수 있는 가임여성을 임상시험에 참여시키기에 한번 더 고려해 볼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 역시 피임약과 시험 약물이 상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시험(동물을 상대로 한 실험)을 거친 후 사람에게 적용하는 초기 임상시험에서 자주 제외된다고 합니다.

법적으로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를 제한하는 항목은 특별히 없지만, 안전과 윤리를 고려해 여성이 시험 대상에서 제외되는 변수가 남성보다 많아 보입니다. 임상시험을 통해 성별에 차이가 없음을 확인해야 하지만, 가임기 여성이 시험 대상 선정 기준의 제외기준에 해당하다보니 임상시험 참여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남성의 참여율이 높다고 하지만, 최종적으로 임상시험을 거칠 때에는 성별을 고려해 시험을 실시하고 안정성을 확인해야 하므로 시판되는 의약품이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성에게 발병률이 높은 근골격계 질환 같은 경우에는 여성의 참여가 높다고 합니다.

여성의 임상시험 참가는 까다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정 약물의 경우에는 남성과 여성의 대사 속도가 다르기도 하는 등 성별에 따른 수용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율은 더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수면제 앰비언(Ambien)의 경우 FDA에서 여성의 복용량을 남성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지금 시판되는 약 중에도 임상시험 참여 여성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작용을 알지 못하고 상용되는 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각도로 고려해보면, 임상시험 참여의 장단점을 충분히 인지하는 시험자를 대상으로 여성시험자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참고>

  • 식품의약품 안전처, 2017.06.05.,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제1상 임상시험 수행 수 주요 고려사항(민원인 안내서)
  • 여성가족부, 2017.08.20., ‘의약품 승인, 사용’ 및 ‘농약 안전사용 장비’등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에 따른 개선 권고
  • 청년의사, 2017.08.23. “[분석]왜 임상시험에 여성 참여가 적을까?”,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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