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같아야 할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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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료법 블로그에서는 매달 각기 다른 전공의 블로거가 쓴 포스트를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이를 존중하기 위해 제정된 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바로 생명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끝이 나기도 하는 곳인 병원에서의 생명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3 킬로그램 내외입니다. 채 37주도 채우지 못한 이른둥이(미숙아)들의 몸무게는 2.5kg이 넘지 않죠. 이렇게 연약하게 세상에 나온 아기들은 태어나서 바로 엄마 품에 안기지 못하고 정상 수준으로 성장할 때까지 인큐베이터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재작년, 한 아기는 태어난지 75일 만에 사망해 의료 분쟁 중이었고, 이 사건을 알리는 과정에서 한 연예인 부부의 아이가 이른둥이로 태어났고, 입원 당시 면회와 인큐베이터를 쓰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지난 연말에 제기되었습니다. 목격자와 당사자, 병원 측까지 주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사건의 진상을 알기는 어렵지만, 당사자가 인정한 사실은 허용된 사람 외의 면회 방문객(조부모)이 동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둥이는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인 만큼 외부인의 출입에 있어서 엄격하게 통제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당 연예인은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실책을 저질렀으며, 이에 사과문을 통해 사죄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한 인기 걸그룹 멤버가 3중 추돌 교통사고를 낸 후 병원 이송 과정에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두 사건 모두 병원과 소방서에서는 특혜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비 유명인, 즉 일반인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병원과 소방서 측의 말을 듣고 기다려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특혜를 받지 않았다는 말만으로는 병원에서 이뤄지는 환자 차별 의혹을 떨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각종 미디어에서 다뤄진 병원의 모습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내에는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심심찮게 방영됩니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요 인물이 근무하는 병원에 가족을 비롯한 각종 지인들이 환자로 실려 오거나 입원하는 장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지인들은 ‘아는 의사’ 덕분에 재빨리 진료를 받고, 수술 순위를 앞당겨 생명을 연장합니다. 이 때문인지 주위에서도 몇 다리 건너서라도 아는 의사가 있는 병원을 선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아는 의사’가 있을까요? 또, ‘아는 의사’는 정말 환자에게 이득을 제공할 수 있으며, 제공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2016년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참고하면 결코 양심적인 행위는 아닙니다. 해당 병원이 사립 병원으로 해당 법률에 직접 저촉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볼 때 떳떳한 행위는 아니지요. (학교 법인 소속 병원의 의사는 해당 법을 직접 적용받습니다.)  또한 교수직을 겸하는 의사 역시 해당 법에 적용을 받고 통념상 공공기관인 병원이기 때문에 부정 청탁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도 헌법 어디에도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를 통해 환자가 이득을 취해도 된다는 법률은 없습니다. 환자가 우선순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경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의료법 제8조(응급환자에 대한 우선 응급의료 등) 1항에서 ‘응급의료종사자는 응급환자에 대하여는 다른 환자보다 우선하여 상담·구조 및 응급처치를 하고 진료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응급 환자의 경우입니다.

위 사례에서 연예인 부부는 의료진의 판단 하에 아동이 응급 환자로 분류되어 인큐베이터 셀을 배정받았습니다. 시비점은, 차도에 따라 A셀에서 F셀로 점차 옮겨가며 퇴원하는 일반적인 절차와 달리 A셀에 있던 아기가 곧바로 퇴원했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A셀의 독점 논란이 불거졌고, 이 점이 환자 차별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걸그룹 멤버의 경우에는 먼저 구급차를 탔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의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고 합니다. 다소 과장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지만, 논점은 명확합니다. 일반인이 받을 수 없는 특혜를 제공받았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지 몇 달이 지난 현재, 공통적으로 의료진의 판단 아래 이뤄진 환자 이송과 관리였다고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병원이 환자를 차별하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판단을 따랐다는 당사자의 입장을 반영해 혹자는 사례를 들며 유명인이 의료 사고가 생길 경우 병원에 가해질 이미지 타격을 고려해 병원 측에서 먼저 특혜를 준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최근에 영화 <쥬만지: 새로운 세계>를 관람했습니다. 비디오 게임 캐릭터가 되어 미션을 해결하는 내용이었는데, 주인공들은 게임 캐릭터로서 3개의 목숨을 부여받습니다. 게임 속의 목숨을 모두 소진하면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현실에서의 성격과 달리 캐릭터의 외양에 따라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숨을 쓰는 데는 용감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이지만, 목숨이 하나 남자 현실 세계에서의 성격이 다시 발현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때, 다른 인물이 주인공에게 말을 건넵니다.

“우리 목숨은 원래 하나야.”

그렇습니다. 환자의 특혜 논란이 쟁점으로 불거지는 데는 우리의 생명이 단 하나라는 데에 있습니다. 병원은 상황에 따라 생명의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곳이기 때문에 환자의 유명세에 따라 치료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의 우선순위를 낮게 측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2조(기본 이념)에는 ‘이 법은 보건의료를 통하여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 개개인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며, 보건의료의 형평과 효율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만 가지고 있는, 모두 가진 무게가 같은 생명을 생명 외의 것에 영향을 받아 무게의 경중을 따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진과 환자 모두 생명 존중 의식을 가지고 삶의 무게를 비교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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